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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흔(傷痕)을 품고 불어오는 처서(處暑)의 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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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년 08월 24일(월) 09:36 [i주간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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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i주간영덕 | |
아침저녁으로 피부에 닿는 공기의 결이 확연히 달라졌다. 한낮의 햇살은 여전히 따갑지만, 그 속을 채우던 끈적한 습기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었다. 밤낮없이 맹렬하게 울어대던 매미의 악다구니가 한풀 꺾인 자리에는 귀뚜라미의 청아한 울음소리가 조심스레 스며든다. ‘모기 입도 비뚤어진다’는 처서(處暑). 더위가 한풀 꺾이고 선선한 가을을 맞이한다는 이 평범한 절기가, 올해처럼 사무치게 반갑고 눈물겨운 적이 또 있었던가.
지나온 여름은 그야말로 대자연의 변덕과 폭력 앞에 인간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지를 뼈저리게 절감하게 한 시간이었다. 시작은 기약 없는 가뭄이었다. 하늘은 야속하리만치 빗방울을 움켜쥔 채 대지를 바짝바짝 말려갔다. 쩍쩍 갈라진 논바닥과 시들어가는 작물들을 보며 농부들의 마음도 함께 타들어 갔다. 거기에 숨이 턱턱 막히는 가마솥더위가 연일 맹위를 떨치며 우리의 숨통을 조여왔다. 에어컨 바람 없이는 단 하루도 버티기 힘든, 길고 지루한 열대야의 연속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하늘이 열리고 비가 쏟아졌을 때, 우리는 해갈의 기쁨을 누릴 새도 없이 공포에 떨어야 했다. 하늘이 뚫린 듯 쏟아진 폭우는 생명수라기보다는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수마(水魔)에 가까웠다. 가뭄 끝에 찾아온 홍수라니. 바짝 메말랐던 땅은 갑작스러운 물길을 감당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극단과 극단을 오가는 널뛰기 날씨 속에서 우리는 매일 먹구름 낀 하늘을 원망하며, 불안하고 지친 하루하루를 견뎌내야만 했다.
그러나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던 그 지독한 열기와 물난리의 공포도 결국 시간의 섭리 앞에서는 순순히 고개를 숙인다. 달력에 새겨진 24절기의 지혜는 참으로 신묘해서, 처서를 기점으로 거짓말처럼 바람의 온도를 바꿔놓았다. 창문을 넘어오는 서늘한 밤바람에 비로소 깊은 숨을 내쉬며, 상처 입은 주변의 풍경을 차분히 돌아보게 된다.
초가을의 길목에 서서 지나온 험난했던 계절을 반추해 본다. 대자연은 우리에게 가혹한 시련을 주었지만, 동시에 그 시련의 땀방울을 식혀줄 청량한 바람도 잊지 않고 보내주었다. 가뭄과 홍수, 폭염이 무자비하게 할퀴고 간 들녘일지라도, 살아남은 생명들은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리고 기어코 다가올 가을의 결실을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비 온 뒤에 땅이 굳듯, 모진 풍파를 겪어낸 들풀과 나무들은 그 상흔을 훈장처럼 품고 더 단단하게 영글어갈 것이다.
상처 없는 계절이 어디 있으랴. 끓어오르던 여름의 격정과 상실의 아픔도 이제는 저물어가는 매미 소리와 함께 서서히 흩어진다. 한결 높아지고 맑아진 가을 하늘 위로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바라보며, 따뜻하게 끓여낸 차 한 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쥔다. 모진 시간을 묵묵히 견뎌낸 나 자신과 우리 이웃들에게, 처서의 부드러운 바람결을 빌려 무언의 위로를 건네본다. 참으로 고단했던 여름이 가고, 비로소 위로의 계절이 당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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