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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위기의 대한민국, 다산에게 길을 묻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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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5월 23일(화) 13:55 [i주간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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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도를 넘는 극단주의와 황금만능주의, 도덕불감증,“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되고, 정직하게 양심껏 순리대로 살아가면 손해 본다”는 식의 오도된 가치관이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인데 이 같은 현상은 사회지도층으로 올라 갈수록 더 심각하다. 한마디로 위기 상황이다. 작금 대한민국은 200년 전 다산선생이“이대로 가면 조선은 반드시 망한다”며 개혁이나 경장보다 더 강력한 변통(變通)을 강조했던 시대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이에 본지에서는 기획특집으로“다산정약용의 위민변통사상(茶山 丁若鏞의 爲民 變通思想)”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다산변통사상연구소장 마중물 김만수 박사와 함께 그 해법을 찾고자 한다.
다산의 ‘민 주체론(民主體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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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i주간영덕 | | 마중물 김 만 수(정치학박사)
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현) 다산변통사상연구소장
현) 경상북도인재평생교육진흥원 경북학숙본부장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민주주의에서는 주권이 왕이나 소수 특권집단이 아니라 민에게 있다. 그렇다면 다산은 이 문제를 어떻게 인식하였을까? 다산에 의하면 국가나 정치지도자가 옛날부터 본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개인으로 구성된 사람들의 삶의 모임이 먼저 존재하였다. 다산이 군주 권력의 정당성의 근거를 추상적인 천명에서 찾지 않고,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현실의 맥락에서 백성의 사회적 필요에서 찾고 있다는 점에서 전통 유교사상의 관점에서 보면 매우 진보적이다. 다산에 있어서 민은 왕이나 국가에 대해서 존재론적으로나 가치론적으로 우선한다. 따라서 왕권은 결코 절대적이지 않고, 민을 위한 본연의 기능에 충실할 때만이 정당성을 갖는 것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그의 정치변통사상은 한마디로 “모든 주권은 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민으로부터 나온다.”는 민주체론(民主體論)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 같은 다산의 주장은 牧과 民의 관계를 재정립한 것이다. 그는 한 걸음 더 나아가 「탕론」을 통해 치자는 백성의 권리를 위임받아 그 권리를 대신 행사하는 자이기 때문에 치자의 자리란 民에 의해서 언제든지 끌어올릴 수도 있고, 끌어 내릴 수도 있는 자리라는 것이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다산변통사상의 핵심은 결국 전통 유학이 추구하는 민본과 위민을 넘어, 민에게 참정권과 저항권, 평등권 등의 주권을 인정함으로써 치자와 민을 대등한 관계로 규정하였다는 점이다. 즉 전통적 민본사상이 지향하는 위민은 치자의 권력을 유지하는 수단으로서의 위민을 의미하는 것으로, 다산에게 있어서의 민본과 위민은 민의 당연한 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즉 다산이 「원목」을 통해 인간사회의 자연 상태를 상정한 것은 목과 민의 관계 재정립을 통한 권력의 탄생과정을 설명한 것으로 보아야한다는 점이다.
우선 다산은 목민심서를 통해 民을 일컬어 “천하에 억울해도 억울하다 마땅히 호소할 곳도 없는 사람들이 백성이지만, 천하에서 태산처럼 높고 무거운 존재 또한 백성이다.…따라서 아무리 힘 있는 권력자라할지도 백성을 앞세워 싸우면 굽히지 않을 권력은 없다.”라고 하면서, 民이 결코 보잘 것 없는 존재가 아님을 위정자들에게 각인 시키려하였다.
군자의 학(學)은 수신이 반이요, 나머지 반은 목민이다
그렇다면 다산은 치자들에게 왜 이 같은 경고 메시지를 보냈을까?
성리학을 통치 이데올로기로 차용했던 조선왕조는 ‘민본(民本)’과 ‘예치(禮治)’에 의한 위민정치(爲民政治)를 표방하였다. 하지만, 건국 이후 그와는 거리가 먼 정치형태인 군주와 양반 중심의 신분제도로 고착화됨으로써 일반 백성은 정책을 결정하는 과정에서 완전히 소외됨은 물론, 위정자들의 착취 대상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에 다산은목민심서(牧民心書) 서문에서 “군자(君子)의 학(學)은 수신(修身)이 그 반이요, 나머지 반은 목민이다. 그러나 성인의 시대가 이미 오래되었고, 그 말도 없어져서 그 도(道)가 점점 어두워져, 요즈음의 목민관(수령)이란 자들은 이익을 추구하는 데만 급급하고 어떻게 목민해야 할 것인가는 모르고 있다. 이 때문에 백성들은 곤궁하고 병들어 줄을 지어 구렁텅이에 떨어져 죽는데도 백성을 보살펴야할 목민관들은 바야흐로 고운 옷과 맛있는 음식에 자기만 살찌고 있으니 어찌 슬픈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개탄하면서, 유가의 근본 정치이념인 ‘민(民)이 본(本)이 되어야한다’는 선진유학의 복원을 재천명하였다.
치자는 백성을 위해 존재한다
다산의 민주체론은 크게 세 가지 유형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첫째, 목(牧=治者)과 민(民)의 관계설정이다.
그의 민 주체론은 목과 민의 관계에서, 누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가? 라는 문제제기에서부터 출발한다. 특히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평소 그의 논리전개 방식인 ‘문제제기⇨비판 및 논증⇨대안제시’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질문과 결론을 동시에 내리고 이후에 논증하는 방식의 두괄식(頭括式) 기법을 쓰고 있다. 이는 이 문제가 다산에게 있어서 그만큼 중요한 사안이었음을 의미한다.
다산은 원목(原牧 첫 머리에 목과 민의 관계를 밝히기 위해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기한다. “목(牧)은 민(民)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민이 목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인가?(牧爲民有乎? 民爲牧生乎?)”
그리고 그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을 보다 명확하게 강조하기 위해 곧바로 답을 내리지 않고, “백성들이 피땀 흘려 생산한 각종 농산물을 바쳐가며 목을 섬기고, 또한 자신의 고혈을 짜내어 목을 살찌우고 있으니, 이런 것으로 보아서는 민이 목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 아닌가?” 라고 한 번 더 되묻는다. 즉 다산이 지적한 것처럼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일련의 현상들을 놓고 보면 분명 민은 운명적으로 당연히 통치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처럼 민이 자의에 따라 치자들을 섬기고 받드는 것이 아니라 치자들의 힘의 논리에 의해 일방적으로 착취당하고 살아가는 현실이 과연 정당한 것인가? 이것이 곧 그가 「원목」을 통해 제기하고자 했던 문제의 핵심이다. 다산은 이 문제에 대한 답으로 그것도 한번이 아니라 두 번을 연거푸 강하게 부정하면서 목과 민의 관계를 분명하게 설정한다.
“아니다! 아니다! 목은 민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曰否!否! 牧爲民有也!)”
다산은 이어 작금의 목과 민의 관계가 잘못된 것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밝히기 위해 牧은 어떤 이유로 출현하였으며, 왜 民이 주체인지? 民의 자율적 선택에 의해 성립되는 ‘정치권력의 기원’을 태초 인류의 탄생과정에서 찾는다. 즉 인류 태초에는 民만 있었고 牧은 존재하지 않았지만 생활하면서 이웃과 다툼이나 분쟁이 일어났을 때 자신들의 무리들 중에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고, 이 같은 인간역사 발전단계에서 ‘민의 필요에 따라, 민의 뜻과 선택에 의해서’ 목이 출현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다산의 주장은 왕권은 하늘이 내려준 것으로 본 전통유가의 천명사상(天命思想)과는 상반된 논리다. 즉 치자란 존재는 단지 민으로부터 권리를 위임받아 민의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하며, 민의 권익창출을 위해 존재하는 대리인이자 대표자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만약 목이 자신에게 부여된 이 같은 책무를 다하지 못할 경우 민은 당연히 그 지위를 박탈시킬 수 있다는 것이 「원목」뿐 아니라 「탕론」, 「전론」,매씨서평에서의 다산의 일관된 주장이다.
그리고 다산은 목의 출현과정과 목의 존재이유 논증에 이어, 원래 법이 만들어진 의미와 현 상황의 잘못을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태고시대에는 이정이 민의 뜻에 따라 법을 제정한 다음 당정에게 올렸고, 당정도 민의 여망에 따라 법을 만든 다음 주장에게 올렸고, 주장은 같은 방법으로 국군에게, 국군 또한 같은 방법으로 황왕에게 올렸었다. 그러므로 법과 제도들은 민의 편익(便益)을 위하여 만들어졌었다. 그런데 후세에 와서는 한 사람이 본인 스스로 황제(皇帝) 자리에 올라 자기 아들ㆍ동생, 심지어는 자기 밑에서 하찮은 일을 맡아 일하던 식솔들까지 모두 제후(諸侯)의 자리를 주었는가 하면, 그 제후들은 또 자기 사람들을 골라 주장(州長)으로 세우고, 주장은 또 자기와 가까운 자들을 당정ㆍ이정으로 세우고 있다. 그러다 보니 황제가 자기 입맛에 맞게 마음대로 법을 만들어서 제후에게 내려주면, 제후는 또 자기 뜻대로 법을 만들어서 주장에게, 또 주장은 당정에게, 당정은 이정에게 각기 그런 식으로 법을 만들어 내려준다. 그러다보니 법이라는 것이 모두 임금은 높고 민은 낮아져, 아랫사람의 것들을 긁어다가 윗사람들에게 붙여주는 꼴이 되었다. 그래서 얼핏 보면 민은 치자를 위하여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처럼 태고시대에는 이정에서 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치자는 민에 의해서 선출되고 생겨났듯이, 입법과정 또한 이정이 민의 뜻을 받들어 민에게 유리하도록 법을 만든 후 ‘이정⇨당정⇨주장⇨국군⇨방백⇨황왕’ 순으로 법이 제출되고 제정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법은 당연하게 민의 뜻이 가득 찬, 민의 편익을 위한 법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후세에 와서는 스스로 황제가 되어 마음대로 제후(諸侯)를 세우고, 그 제후들은 또 자기 사람들을 골라 주장(州長)으로 세우고, 주장은 또 자기 사람들을 추천하여 당정ㆍ이정을 세웠기 때문에 역(逆)이 순(順)이 되고, 순이 역이 되었다고 다산은 「탕론(蕩論)」을 통해 지적한다. 이것은 다산이 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오직 통치자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목적을 두고 하부 조직의 장을 임명하고, 그에 맞는 법을 제정하여 실시해 왔던 당시 하향식 정치구조의 불합리성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즉 이 같은 전제군주체제하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주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법의 제정 역시 황제가 자기 입맛에 맞게 법을 만들어서 아래로 내려주다 보니 한마디로 민과 목의 관계에서 주(民) 객(治者)이 전도된 꼴이 되었다는 것이 다산의 진단이다.
불의에 대한 저항은 백성의 당연한 권리다
둘째, 민의 저항권을 인정하고 있다.
다산 변통사상의 주요한 화두인 民에 대한 인식과 민중저항권은 그가 곡산 부사로 부임할 당시 민이 수령과 아전의 부당한 횡포를 따지고 바로 잡기 위해서 1천여 명의 주민을 동원하여 항의를 벌인 이계심의 행동을 천금을 주고도 사야 할 정당한 행동으로 높이 평가하였다.
다산의 이 같은 파격적인 조치는 民이 정치적 주체이자, 민의 참정권과 저항권을 인정한 중요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이 문제를 그의 만년 회고록인 「자찬묘지명」에 심도있게 거론하고 있다는 것은 그의 이 같은 사유가 모든 경서의 재해석과 1표2서 등 경세관련 저술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음을 의미한다.
책무를 다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갈아치워야 한다
셋째, 치자가 민으로부터 신임을 잃었을 때 민의 발의로 언제든지 파면할 수 있는 권리인 소환권(召還權)을 인정하고 있다.
그가 탕론 전론등을 통해 제기하고 주장한 내용들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치자는 본래 민의 추대에 의하여 권리를 위임 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치자는 당연히 사회적 갈등과 분쟁을 해결하고, 나아가 민의 권익을 위한 정사를 펼쳐 태평성대를 이루어 내는데 전심전력해야하는 것이 책무요 도리다. 따라서 만약 치자가 이를 어길시 권력의 주체인 민은 그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교체하는 것은 당연하며, 이것은 옛 도(道)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는 원정(原政)을 통해 “정치(政治)란 바로 잡는 것(正)이다.(政也者,正也)”라고 규정하면서, 치자의 존재 이유는 오로지 민의 편익을 위함에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치자는 잘못된 관행을 무조건 따를 것이 아니라, 토지를 개량하여 백성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고, 그 고장과 다른 고장의 있고 없는 것을 서로 융통하게 하고, 군대를 조직하고, 멸망의 위기에 있는 자를 구제하고, 세대가 끊긴 자는 이어가게 하며, 죄지은 자를 형벌로 징계하고, 공을 세운 자에겐 상을 주어 죄와 공을 가리는 것, 붕당(朋黨)을 없애고 공도(公道)를 넓혀 어진 자를 기용하고 불초한 자를 몰아내는 것이 정치요, 치자의 책무라는 것이다. 따라서 패정을 일삼아 민심을 잃은 군주나 목민관은 언제든지 민에 의해 퇴출될 수 있음을 경고함으로써 치자의 역할이 단순히 민을 통치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위민이 우선임을 강조하려한 것이다.
더 나아가 그는 국가의 부가 곧 민생의 안정이라는 입장을 취하면서도,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한 법과 제도의 개혁은 결국 民을 위한 변통을 대전제로 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러한 그의 ‘민주체사상’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고자한 저술서가 바로 1표2서(一表二書)의 주요내용이다.
목민심서 저작의도 ‘민을 위한 목민관의 역할강조’
목민심서의 실질적인 저술 의도는 민 주체론 실현을 위한 목민관의 역할과 민본주의에 입각한 철저한 위민을 강조하고 있다. 특히 그는목민심서 첫 머리에 “다른 관직은 스스로 희망하여 구해도 좋으나, 수령(守令)의 자리만큼은 절대 함부로 구해서는 안 된다.”라고 강조하였다. 왜냐하면 고을의 수령이란 자리는 민의를 수렴하여 지역 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의료 복지 등 민생과 직결되는 모든 현안들을 처리하는 중요한 자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상사가 명령한 것이 공법(公法)에 어긋나고 민에 해가 되는 것이면, 절대 굴하지 말고 확실하게 소신을 지켜야 하며,···비록 이것 때문에 좌천을 당하더라도 소신을 굽혀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아무리 조정에서 내려온 법령일지라도 그 법을 실행할 경우 민에게 피해가 갈 것으로 판단되면, 즉시 병을 핑계로 벼슬을 버리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강조한다. 즉 군왕이나 조정의 지침이나 명령이 백성의 이익에 반할 때는 비록 좌천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소신을 굽히지 말고 거부할 줄 알아야하며, 경우에 따라서는 관직을 과감하게 버리는 것이 목민관의 자세라는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牧이라는 직위는 民을 위해 존재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당연히 민의 편에서 업무를 집행하는 것이 목민관의 자세이자 책무임을 강조한 것이다.
법의 존재 이유는 처벌이 아닌 교화가 우선이다
그의 민주체사상은흠흠신서(欽欽新書)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즉 ‘삼가고 삼가(欽欽)는 것이 형벌을 다스리는 근본(固理刑之本也)’이듯이, 법의 존재 이유는 궁극적으로 처벌보다 교화가 우선이 되어야하며, 따라서 법은 무조건 민을 억압하고 민 위에 군림하는 통치수단으로 악용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 다산의 주장이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民에 대한 애민(愛民)의 표현이기도하지만, 권력구조 내에서 民이 차지하는 위치는 절대적인 위치일뿐만 아니라, 협력하는 관계임을 역설한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그가 원목을 통해서 모든 법과 제도는 민의 의사를 바탕으로 상향식으로 이루어져야한다고 강조한 것과도 상통한다.
다산은경세유표에서도 민을 위해서 정치가 존재해야한다 하여 민을 위한 국가변통에서 부국강병을 첫째로 하고 있다. 이를 위한 방안으로 선진문물과 기술을 도입하여 실생활에 필요한 각종 생필품과 농기계 병기 등을 연구 개발하고 이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급할 이용감(利用監)을 설치할 것과, 토지의 문란으로 민이 받는 피해를 줄이기 위해 이 통계와 수리에 능한 능력자를 차출하여 토지를 전문으로 다루는 경전사(經田司)를 설치할 것을 제안하였다.
특히경세유표 44권 중에 제11권 전체를 고적지법(考績之法만 다룰 정도로 기존의 고적법(考績法)을 더욱 보완하고 강화할 것을 제의했다. 다산은 「고적지법」에서 요순시대 태평성대의 비결을 신하는 나라와 민을 위해 열심히 일한 내용을 정리하여 왕에게 보고하고, 왕은 그 보고를 들은 후 엄정한 기준에 의해 상벌을 내려 신하들을 철저하게 관리한데 있듯이, 민생을 담당하는 관리(官吏)들을 철저히 관리(管理) 감독하고, 그들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하여 신상필벌의 원칙에 입각하여 처리하기만 한다면 조선은 반드시 요순시대보다 더 부국해지고, 따라서 나라에 혼란 따위가 없어 백성들이 편안히 지내는 그야말로 태평성대(太平聖代)한 세상을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이 다산의 주장이다. 즉 치자의 존재 이유는 권력의 주체인 민의 삶의 질 향상에 있고, 이와 같이 치자에게 부여된 역할을 제대로 수행 했을 때 부국강병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진다는 것이 다산의 논리이자, 다산 변통사상의 핵심이다.
마중물 단상(斷想)
그렇다면 다산은 왜 이 같은 주장을 일관되게 편 것일까?
전통적인 유교사상에 따르면, 백성은 군(君)→신(臣)→민(民)의 하향식 통치 질서 속에서 군주(君) 개인의 도덕적 수양(修己)을 통하여 현자(賢者)가 되어 ‘인정(仁政)’을 베풀 때 백성의 삶을 위한 정치가 이루어지고, 그 지배적인 규율은 ‘천명(天命)’이라는 차원에서 도출되고 있다. 따라서 유교의 민본사상은 백성들을 아끼고 배려하는 위민(爲民), 애민(愛民)을 강조하고 있지만, 군→신→민의 지배종속관계의 규율을 토대로 한 것이기 때문에 民의 의사가 군(君)에까지 닿을 여지는 거의 없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다산의 民에 대한 사유는 民이 本이 되어야한다는 점에서 전통 선진유학사상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 그러나 선진유학의 민본사상은 위민에 한정되어 있는데 비해, 다산은 진일보하여 민의 참정권과 저항권은 물론 치자의 선출과 교체권한 등 민의 주권을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즉 민의 존재는 단순히 치자의 인정만을 기다리거나 바라만 보고 있는 정치의 객체가 아니라, 통치자를 선출할 수 있는 권리를 스스로 지닌 존재이다. 다산은 한걸음 더 나아가 천재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이상적 정치시스템으로 점층식 대의민주제를 제안함으로써 하향식 전제군주제의 모순과 폐단을 극복하려했다. 즉 목민(牧民)의 民은 牧에 예속된 민이 아니며, 따라서 통치자는 民 위에 군림하거나 착취할 수 없는 오로지 民의, 民에 의한, 民을 위한 존재일 뿐이라는 것이다.
총선이 코앞에 닥쳐오고 있다. 우리가 머슴을 뽑을 때는 온 동네 주민들이 한데 모여 술판을 벌여 놓고 풍악과 가무를 즐기며 한마당 잔치를 벌였다. 그러나 작금 우리의 정치판은 어떠한가? 백성의 안위와 민생은 뒷전이고, 벌써부터 난타전이다. 잔치판이 되어야할 선거판이 난장판이 된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참으로 안타깝다. 한 석이라도 더 차지하려고 잔머리 굴리는데 다들 혈안이다. 주인은 백성인데 주객이 전도되어 설치는 꼴이 참으로 가관이다. 선거 때만 되면 간도 쓸개도 다 뽑아줄 것처럼 해놓고, 당선되면 자신이 주인인양 설쳐댄다. 이 땅의 대다수 위정자들은 수신도 위민도 없는 듯하다.
각성하자! 작금 정치가 이 모양 이 꼴인데는 우리들에게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
정신 차리자! 이번 선거 때는 제대로 뽑고, 제대로 심판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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