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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길 잃은 대한민국, 다산에게 길을 묻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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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5월 17일(수) 17:37 [i주간영덕]
 
■ 기획특집-길 잃은 대한민국, 다산에게 길을 묻다(2)

편집자 주) ------------------------------------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도를 넘는 극단주의와 황금만능주의, 도덕불감증,“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되고, 정직하게 양심껏 순리대로 살아가면 손해 본다”는 식의 오도된 가치관이 정치 사회 교육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인데 이 같은 현상은 사회지도층으로 올라 갈수록 더 심각하다. 한마디로 위기 상황이다.

작금 길을 잃고 깊은 수렁에서 허우적대는 대한민국의 모습은 마치 200년 전 다산선생이“이대로 가면 조선은 반드시 망한다”며 개혁이나 경장보다 더 강력한 변통(變通)을 강조했던 시대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이에 본사에서는 기획특집으로“다산정약용의 위민변통사상(茶山 丁若鏞의 爲民 變通思想)”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다산변통사상연구소장 마중물 김만수 박사와 함께 그 해법을 찾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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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통(變通)만이 살길이다

마중물 김 만 수(정치학박사)/경상북도인재평생교육진흥원 학숙본부장


우리는 왜 다산에 열광하는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칠흑같이 어두운 봉건시대에 75년 생애를 파란만장한 삶을 치열하게 살다 간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鏞, 1762-1836)!! 그를 가까이 닥아 갈수록 그의 ‘학문의 산맥과 사상의 바다’는 참으로 높고도 깊고도 넓으며, 거대한 학문의 산맥과 도무지 그 넓이와 깊이를 헤아리기조차 힘든 사상의 바다가 펼쳐진다.

그래서 다산에 심취한 많은 사람들은 다산을 가리켜 “조선 후기 대표적인 개혁사상가, 지식인의 모범이자 성리학(주자학)에 매몰된 조선 지식인들을 강력 비판하며 모든 경전과 전통유학을 실학적으로 재해석하여 집대성한 주자를 능가하는 위대한 사상가, 한자가 생긴 이래 가장 많은 주옥같은 540여권의 저서를 펴낸 저술가, 김부식의 <삼국사기>를 강력 비판하며 중국 역사서를 역 추적해 <아방강역고(我邦彊域考)>란 제하에 한국고대사를 재정립한 역사지리학자, 동학혁명의 단초를 제공한 역성혁명론자, 베트남 통일의 아버지 호치민의 정신적 스승, 서학 사상의 개척자, 세계 지성사에 내놔도 부족함이 없고, 괴테 루소 로크 등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는 동양의 사회계약론자, 조선의 레오나르도 다빈치, 조선의 엔지니어, 혁명을 꿈꾼 시인, 그리고 뛰어난 법학자이자 의학자” 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수식어로 다산을 극찬하고 있다.

또한 다산과 관련하여 지금까지 각 분야에서 2천 편이 넘는 학술논문과 300여 편의 석·박사 논문, 그리고 100여권이 넘는 단행본이 출간된 것만 보아도 그만큼 다산에 대한 학문적 관심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이토록 다산에 열광하고, 그의 삶과 사상을 배우고 따르고 싶어 하는가? 아니 수많은 모습 중 다산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다산은 타고난 천재에다 5대에 걸쳐 옥당을 지낸 금수저 가문에서 태어나 훌륭한 문중의 아내를 만나고 정조대왕의 총애를 독차지하며 삶의 절반가량은 큰 굴곡 없이 승승장구하며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특히 20대에 수차례 과거시험에 수석으로 합격 했을 뿐 아니라 수시로 성균관 유생들과 신료들 앞에서 열린 정조의 책문(策問)장에서 국기정책과 정치현안을 놓고 정조와 스스럼없이, 때로는 밤샘 끝장토론을 벌이면서 까지 대책(對策)을 제시하는 등 정조대왕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지냈다.

특히 정조의 책문과 다산의 대책은 200여 년 전에 주고받은 담론이지만, 지금도 유효한 내용이 많다.
예컨대 '정치의 관건은 신뢰다', '사치스런 사회 분위기를 경계하라', '사람을 정확히 알아보고 등용하라', '민생을 챙기는 정책을 재건하라', '훌륭한 문장으로 정책을 펼쳐라', '거짓을 넘어 진실한 학문에 힘쓰라'는 주문은 지도자의 성찰과 애민 정신, 민생을 향한 치열한 투혼이 서려 있으며 시대를 불문하고 지도자가 귀담아들어야 할 말이다.


위기를 기회로

그러나 그의 이 같은 뛰어난 학문과 천재성은 정적들로 하여금 시기의 대상이 되었고, 정치적 동지이자 학문적 동지였던 정조의 사망으로 신변의 위협을 느낀 다산은 나이 마흔이 넘어서면서부터 모든 관직을 버리고 낙향해 학문연구에 매진하려했지만, 그를 시기하던 부패관료들의 드센 반발에 의해 벼슬마저 박탈당하고 끝내 당파싸움과 천주교 박해의 희생양이 되어 큰형은 감옥에서 사별하고 둘째 형님 약전(자산어보 저자)과는 겨우 목숨을 부지해 형님은 흑산도로, 본인은 18년이란 기나긴 세월을 중죄인 취급 받으며 포항과 강진에 유배되어 인생의 황금기인 4~50대를 보내야 했다.
그야말로 패가망신이자 끝없는 절망과 참혹한 고통과의 싸움이기도 했다.

이 정도 같으면 대다수 유배자들은 자포자기하여 술독에 빠져 살거나 한양에서의 해배(解配)소식을 손꼽아 기다리며 허송세월을 보내지만 다산은 달랐다.
집안이 풍비박산되고 가문이 폐족위기에 내몰렸음에도 위기를 오히려 기회로 받아들이며 그는 유배생활을 오히려 하늘이 자신에게 학문할 기회를 준 것이라 위안하면서 1천여 권이 넘는 고전과 경전들을 공수하여 복사뼈가 세 번이나 구멍 날 정도로 독서와 학문연구에 매진한다.
이해될 때까지 읽고 또 읽고, 그래도 미심쩍으면 소학 기초부터 다시, 그리고 붓을 들기 전에 철저한 고증을 거친 후 모든 경전들을 실학적로 재해석하고 저작활동에 몰두했다.
창살 없는 감옥과도 같은 기나긴 유배생활을 꿋꿋하게 견디며 인고(忍苦)의 고통과 최악의 위기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끓어오르는 분노를 생산적 에너지로 전환하여 학문 연구에 매진한 다산의 긍정적 마인드! ‘다산학(茶山學)’은 그렇게 탄생 된 것이다.


변통(變通)만이 살길이다

주역사전(周易四箋)은 다산이 강진유배초기아학편(兒學編) 저술 외에 처음으로 공을 들여 1803년부터 1808년까지 4차례의 수정작업 끝에 완성한 대표적 경학주석서이다.
주역사전이란 “추이(推移) · 물상(物象) · 호체(互體) · 효변(爻變) 등 4가지 방법을 이용하여주역을 풀이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특히 다산은 두 아들에게 이르기를 “��주역사전은 바로 내가 하늘의 도움을 얻어 지은 책이요,상례사전(喪禮四箋)은 바로 내가 성인(聖人)을 독신(篤信)하여 지은 책이니, 다른 책들은 다 폐기하여도 좋으나 이 두부(2部)만큼은 후세에 꼭 전해졌으면 좋겠다.”라고 할 정도로 가장 많은 심혈을 쏟아 저술한 노작으로 꼽았다.
다산은주역사전에서역을 의리(義理)를 밝힌 책으로 규정했던 주자의주역본의(周易本義) 등 송나라 성리학자들의주역 이해방식에서 탈피하여, 개과천선(改過遷善)을 위한 윤리서로 이해하면서 경전 본문의 차례를 재편성하는 한편 독자적인 해석을 가했다.
곧 64괘는 천지와 인간을 주재하는 천의 명을 자연에서 유추하여 형상한 것이며, 인간은 공정함과 성의를 다하여 올바른 행위를 하기 위해 ‘주역’을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특히 주역사전은 육경사서(六經四書)에 대한 전면적 재검토와 이를 바탕으로 낡고 병든 조선을 근본적으로 변통하고자 했던 다산의 경전 재해석 작업의 한 산물이다.

주역에서 말하는 변통(變通)이란 “역(易)은 궁하면 변하고, 변하면 통하게 되고, 통하면 오래간다.(易, 窮卽變, 變卽通, 通卽久)”는주역의 핵심원리로,주역에는 ‘變’이 1,524회, ‘通’이 751회 언급되고 있다.
이는주역의 핵심원리가 변통임을 입증하는 중요한 근거다.
즉 어떤 일이 뜻대로 되지 않거나 그것이 한계에 이르러 막히면 반드시 이로운 방향으로 뚫어야 변화하고, 변화하면 통하게 되며, 통하면 오래도록 지속된다는 역(易)의 변통원리를 강조한 것이다.
바꾸어 말하면 ‘변통이란 지나간 시대의 가치로 더 이상 국가를 운영할 수 없다면 정치ㆍ사회적으로 오래된 법과 제도를 새롭게 바꾸어야한다’는 뜻으로 고전적 의미의 경장(更張)이나 오늘날 개혁(改革)이란 용어보다 더 강력한 철학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역(易)이란 “이로운 변화와 소통”

주역의 역(易)이라는 글자는 음양(陰陽)과 자연변화의 두 축을 상징하는 日과 月(또는 시시각각 변화하는 도마뱀을 그린 모습)을 결합한 것으로, 역(易)이란 “이로움을 다하는 변화와 소통”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이로운 변화’란 궁극적으로 삶의 이로운 방향이 무엇인지를 추구하는 것으로주역에서는 도리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변역(變易)이 단순히 이로움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음양대대(陰陽待對)의 도를 따르는 해결책을 제시함을 말한다.
또한주역의 수많은 경문에는 원형이정(元亨利貞) 등 이(利)의 개념을 항상 곧음(貞), 의로움 등과 짝을 이루어 사용하고 있다.
즉주역이 추구하는 利는 개인적 사익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利를 함께 하는 공익적 성격을 지님을 알 수 있다.
또한 역(易)이 상징하고 있는 생성과 변화의 세계는 끊임없이 만사만물의 상호대립과 충돌이라는 방식을 통해서 표현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대립과 충돌은 결코 상호 파괴와 말살이 아니라, 오히려 서로 대립적인 것들이 조화하여 공존을 목표로 변화ㆍ발전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울러 ‘도(道)ㆍ기(器)ㆍ변(變)ㆍ통(通)’이라 하여 “형상이 있기 전을 도(道), 형상이 있은 후의 것을 기(器), 도가 기를 바꾸고 통제하는 것을 변(變), 변을 예측하여 행하는 것을 통(通), 이러한 변통(變通)을 천하의 사람들에게 적용하는 것을 사업(事業)이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즉 변통이란 본질적으로 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막힌 것이 통하도록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마련하는 것이다.

그래서 다산은 역론(易論) 에서 “큰일을 당하면 이로 인해 그 진퇴(進退)와 존망(存亡)의 이유를 살펴서 스스로 그 처리 방법을 알 수 있는 해법은 오직주역에만 있으며, 공자와 맹자 등 성인(聖人)들이 오직주역만을 소중하게 여긴 이유도 여기에 있다”는 것이다.
특히 다산은주역사전을 통해 “첫째가 추이(推移)이고, 둘째가 물상(物象)이며, 셋째가 호체(互體)이고, 넷째가 효변(爻變)이다.”라고 자신의 독특한 역학이론인 역리사법(易理四法)의 의미를 강조하면서, “체(體)를 논하자면 64괘(卦)는 각각 형체를 이루고 있지만 그 상(象)의 64괘는 다른 괘에서 변화를 받지 않음이 없다.
건괘는 곤괘로부터 변화했고, 곤괘는 건괘로부터 변화했다.
이것이 바로역(易)이다.”라 하였다.
따라서주역에서는 괘도 변화하고, 효도 변동하며, 음양과 강유가 서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즉 다산 역학관의 핵심은 한 마디로 변통(變通)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통원리에 의해 변해야 통한다는 것이 다산의 인식이다.
그래서 그는주역사전 계사하전(繫辭下傳) 에서도 “…역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변화를 따를 뿐이다.…괘(卦)가 추이(推移)하지 않고, 효(爻)도 변동하지 않으면역이 아니고 죽은 법이다.”라고 단정짖고 있다.
즉 그에게역이란 변(變)이며, 막힌 곳은 뚫어 통(通)하게 해야 오래간다는 변통(變通)을 의미하는 것이다.


변하고 소통되면 오래 유지된다

“궁하면 변해야 하고, 변화하면 통하고, 소통되면 오래간다.”
이 같은주역의 변통원리는 다산의 대표적 경세서인경세유표(經世遺表) 서문에 그대로 관통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창건되어 대통(大統)을 전해온 지가 벌써 400여 년이 되다보니 기강이 해이해져 모든 일들이 잘못되어 가고 있으니, 마땅히 법령을 고치고 관직(官職)을 재정비해야 한다.…세상은 나날이 변화하는데, 군주의 욕심은 끝이 없어…나라의 기강이 갈수록 문란한데도 단서조차 찾을 길이 없으니, 지금 서둘러 바로잡지 않으면 반드시 토붕와해(土崩瓦解)하고 말 것이다.”라고 경고하였다.
토붕와해란 땅이 붕괴되고 기왓장이 깨진다는 뜻이지만 여기서는 나라가 망한다는 의미다.
즉 낡고 오래된 기존의 잘못된 법과 제도, 잘못된 폐습과 관행들을 완전히 갈아 엎는 대변통 없이는 국가와 사회는 절대로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에 다산은 “털끝 하나 썩고 병들지 않은 곳이 없으니, 지금 고치지 않으면 반드시 나라가 망한 다음이라야 그칠 것이다.
나라가 이 지경인데 어찌 충신과 지사가 팔짱만 끼고 방관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경세유표 저작 동기를 밝히고 있다.
또한 모든 것이 막혀, 터지기 일보직전인 당시의 총체적 위기 상황과 관련하여 “조정은 백성의 심장이고, 백성은 조정의 사지이다.
따라서 힘줄과 경락(經絡)의 연결과 혈맥의 유통은 순간의 막힘이나 끊김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런데 지금은 백성들이 두려워 근심과 불안에 떨고 있는데도 안위(安慰)하지 않고, 많은 사람이 떠들썩하게 들고일어나 술렁거리는데도 민의 마음을 진정시켜 편안하게 하려는 생각은 하지 않고 오직 침탈(侵奪)과 임시방편만을 서두를 뿐, 집이 무너지면 제비나 참새도 서식할 곳을 잃는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면서 제대로 된 변통이 아닌 임시변통에만 급급하는 조정의 잘못을 강력히 비판하였다.
다산의 이 같은 지적은 막힌 곳은 반드시 뚫어야만 모든 것이 원활하게 통하고, 그래야만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을 이미한다.

또한 다산은맹자요의(孟子要義)에서도 변통과 관련하여 “군자(君子)의 학문은 두 분야를 벗어나지 않는다.
하나는 수기(修身)이고, 둘은 치인(治人)이다.
수신은 자신을 선(善)하게 하는 일이요, 치인이란 남을 사랑하는 것이다.
자신을 착하게 함이란 의(義)이고, 남을 사랑함은 인(仁)이 되는데, 인과 의는 서로에게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어느 한쪽도 폐할 수 없다.
두 가지 일에서 하나만 붙잡는 것은 변통(變通)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이는 잘못이다.”라고 하면서, 군자란 수기와 치인의 이치를 터득해야 변통을 알 수 있음을 역설하였다.
그가 경학 주석서인육경사서와 대표적 경세서인일표이서를 마무리하면서 “��6경4서(六經四書)로써 몸을 닦게 하고,1표2서로써 천하 국가를 다스릴 수 있게 하고자 함이었으니, 이제 그 본(本)과 말(末)을 갖추었다.”고 술회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처럼 다산은 변통의 성공여부는 민의 대리인인 치자들의 의지와 실천에 달려 있으므로 자신이 재해석한 경전으로 수신하고, 경세서로 천하를 다스릴 수 있는 성인(聖人)이 나타난다면 반드시 새로운 세상이 열릴 것으로 확신했다.
즉 경전 주석서는 수기(脩己)에 해당하고, 1표2서는 치인(治人)에 해당된다.
그러나 이것은 경전 주석서에는 수신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치인에 관한 것도 많아 이것이 1표2서에서 주장한 변통사상의 표본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가 일반적인 이해를 돕기 위한 표현이다.
즉 다산은 수기와 치인을 기계적으로 양분하지 않고, 바로 치인의 과정에서 수기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보았다.
이 같은 수기와 치인의 상보관계는 사계절의 변화와 음양대대의 원리에서 희망과 해답을 구하고, 지혜와 덕을 갖춘 성인이 이를 현실사회에 구현한다는주역의 변통론과 매우 닮아 있다.


민심이 이반되면 천명도 가버린다

또한주역의 변통론은 음양의 상보성(相補性)을 강조하고 있다.
이는 다산이 목(牧)과 민(民)의 관계를 서로 대립적인 관계가 아닌 상보적관계로 보고 있다는 점에서 인식을 같이 한다.
뿐만 아니라 다산이 원목 ․ 전론 ․ 탕론 등을 통해 언급한 권력의 탄생과정과 민 주체론, 패정군주 교체의 정당성은주역의 오묘한 우주의 생성과정과 자연의 생명변화를 지속케 하는 음양의 변역(變易)원리와 맥을 같이한다.
아울러 원정 과1표2서 등을 통해 제시한 혁신방안의 궁극적인 목표는 잘못된 법과 제도를 바로잡아 민생을 회복하는 것이다.
특히 원정 을 통해 “지도자가 정치를 잘못하여 민의 삶이 궁(窮)하면 민심이 이반되고, 민심이 이반되면 천명도 가버리기 때문에 급히 서둘러야 하는 것이 정(政)이다”라고 역설한 것은 본질적으로 민의 삶의 질 향상을 위해 막힌 도가 통하도록 새로운 정책적 대안을 마련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현실은 참으로 암울하다.
세상은 초를 다투어 급변하는데 정치는 후진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맑아야 할 웃물이 위로 올라갈수록 혼탁스럽다.
내로남불이 판을 치고, 공정과 상식이 무너진지는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는 실종되고 당리당략에 매몰되어 도무지 소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다.
마주보고 달리는 열차를 방불케 한다, 더군다나 위정자들에게 진실과 신뢰를 찾아보기란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다.
참으로 안타깝다.

‘군주민수(君舟民水)’라고 지도자는 배요, 백성은 물이라 하지 않았는가? 이 땅의 위정자들에게 고하노니 물은 배를 띄울 수도 있지만 뒤집어엎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주기 바란다.
주간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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