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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큰스님을 떠나보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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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2월 11일(월) 09:48 [i주간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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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i주간영덕 | | 스마트폰을 집어 들었다. 폴더를 열어보니 걸려온 전화 한 통이 있었다. 전화를 걸어 신분을 밝히고 안부를 물었다. 울먹이며 귀속을 파고드는 목소리 “큰스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오늘 아침 8시 39분에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목소리의 진동이 가슴을 망치로 내리치는 충격을 주었다. 한참 동안 말문이 닫혔다. 머리가 하얗게 비었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선생님께는 알려드려야 될 것 같아 전화했습니다.” 그저 “예, 알겠습니다.”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창밖에는 가을비가 산천을 적시고 비보는 내 마음을 적셨다.
가을비 머금은 구름처럼 슬픔에 젖은 내 마음을 쥐어 짜본다. 집 밖으로 나와 우산을 받쳐 들고 걸으면서 큰스님과 지난 인연의 실타래를 따라가 본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봉사와 성취의 보람, 오해와 질시의 눈총 등 일희일비 때마다 큰스님을 찾아 격려와 위로를 받았다. 큰스님은 그때마다 “장 선생을 만나면 뭔가 좋은 일이 생깁니다.”고 늘 말씀하시곤 했다. 사실은 내가 스님을 뵙고 옛 선인들의 지혜로운 삶의 이야기를 듣고 나면 뭔가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 들었다. 산사를 들어설 때 내 마음의 무거운 짐은 내려올 때는 모두 내려놓고 가벼운 마음이 된다. 내가 드릴 말씀을 큰스님이 먼저 하시곤 했다.
큰스님은 말씀만 베푸는 것이 아니다. 물건도 재물도 베풀었다. 언제나 돌아올 때는 무엇인가 손에 쥐여 주셨다. 심지어 텃밭에 심은 무, 배추도 뽑아 주었다. 글씨와 그림의 작품도 아까움 없이 주셨다. 나 역시 받아 온 예술작품을 필요한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소장하고 있는 책들을 필요하면 모두 가져가란다. 덕분에 철학, 종교, 역사책을 가지고 와 지금 읽고 있다.
큰스님은 우리 민족의 미래를 위해 목숨을 바치신 김구 선생, 안중근 의사, 윤봉길 의사, 이준 열사, 유관순 님 등 이들 호국영령의 얼을 추모하고 그 정신을 계승하고 싶어 했다. 나더러 애국선열정신운동 사단법인 설립 절차를 물어보시며 초안을 만들어 달라며 등기된 사찰 규약을 전해 주었다. 알고 보니 수년 전부터 이런 운동을 사비를 들여서 해 오고 계셨다. 이것을 법인화하여 체계적이고 제도권 안에서 지속적으로 하고 싶은 것이었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돌아가셨지만, 그 정신만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어릴 적 출가하여 팔십이 넘도록 오로지 부처님께 몸을 맡기시고 자비를 베푸셨다. 그 많은 세월 동안 불교의 중흥과 신자들의 흩어진 삶의 조각 퍼즐을 맞추시고, 선열들의 충혼탑을 건립하여 애국애족정신운동에 앞장섰다. 당시 국민은 가난하여 먹기 위해서 사찰을 찾아 들어온 사람이 부지기수였다고 했다. 사찰에서도 많은 사람을 배부르게 먹일 수 없어 보시를 찾아 나셨고, 심지어 밤에 논밭에 심은 농작물을 서리까지 하는 스님도 있었다면서 안타까워하신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남을 탓하기보다 늘 자신을 탓하시면서 인연을 강조하셨다. 지난해 우연찮게 몸이 좋지 않아 병원을 찾았는데 간단한 수술이라는 의사의 말에 수술하는 도중에 암이 전이되어 건강이 급속도로 나빠졌다. 의사의 실수라면서 억울해하는 여래심보살을 다 인연이라고 하시면서 오히려 안심시키기도 했다. 담담하게 자신의 건강상태를 받아들이셨다. 그 와중에서도 정작 본인이 사용할 좋은 약재를 다른 환자에게 주기까지 하셨다. 나보다는 늘 남부터 먼저 생각하는 큰스님의 높은 자비심이 가을 하늘만큼 높아 보였다.
큰스님은 나에게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었다. 나 역시 이야기 듣는 것을 무척 좋아했다. 그중에서도 돌아가시기 전 최근의 이야기 줄거리는 이러하였다. “어느 날 신도 한 분이 찾아와서 자기는 열심히 일하고 돈도 꽤 많이 벌었는데 자꾸만 나가고 없다고 했다. 그래서 무엇이 문제인지 모르겠다며 좋은 방편이 없을까 하고 묻어왔다. 잠시 생각하다 그러면 내가 시키는 대로 할 것을 맹세할 수 있는지를 묻고는 ‘그래 열심히 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힘들고 쉬고 싶을 때는 그냥 마음 가는 대로 하여라.’ 그리고 옛날 젊은 시절에 가지고 있던 부적의 판을 꺼내어 부적을 하나 만들어 주고는 가슴 속에 꼭 지니고 있을 것을 당부했다.
그 신도가 때마침 건물 철거작업을 힘들게 하던 중 친구가 골프치자면서 전화가 왔다. 힘들고 쉬고 싶을 때는 마음 가는 대로 하라는 큰스님의 말씀이 생각나서 부적을 한번 꺼내어 보고는 그대로 따랐다. 사장이 떠나자 함께 일하던 직원들도 조금 더 일하다가 사장도 없는데 하면서 농땡이 치자면서 모두 일찍 현장을 떠났다. 그 순간 철거 건물이 붕괴하였으나 인명피해는 막을 수 있었다.
사장은 이 모두가 큰스님 덕분이라며 돈을 얼마를 드릴까 물어왔다고 했다. 만약에 계속해서 일했다면 많은 사람이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을 터인데 천만다행이라는 것이었다. 돈 받는 것을 거절하시고 꼭 하고 싶다면 사찰 마당에 흙이나 깔아 신도들이 불편하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래서 지금 사찰 넓은 마당에는 마사토 흙이 깔려 있다” 재미있는 하나의 에피소드 같지만, 이야기를 들으면서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유학산 자락에 위치한 사찰에는 스님은 떠났지만, 지난날 함께한 추억은 산사 여기저기 알알이 박혀있다. 말씀과 자비심은 내 가슴속에 그대로 남겨두셨다. 다비식에 참가하여 마지막 가는 스님을 배웅하고 산사를 내려오는 길에는 스님의 체온처럼 따뜻한 가을 햇볕이 내리쬐고 있었다.
수헌 장은재 이학박사, 참생태연구소 생물보전기술연구소 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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