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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잡초와 귀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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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05월 23일(화) 14:00 [i주간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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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i주간영덕 | | 지금의 농촌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지만 어릴 적 따스한 봄날 아지랑이와 함께 보리밭 이랑사이 잡초를 뽑던 추억이 있다. 파란 보리 새싹은 긴 겨울동안 세찬 바람과 눈보라에 매를 맞고 짓밟히면서도 봄이 되면 어김없이 초록의 친구를 대동하고 나타난다. 봄바람과 봄비에 춤을 추고 노래하면서 파란 보리 새싹 이랑사이사이에 잡초는 길게 목을 빼고 발돋움하고 있다. 뒷동산 진달래가 붉게 물들고 마을 앞 하천가에 버들강아지 물오를 때 농부들이 잠깐 눈길만 거두어들이기만 해도 잡초는 보리 새싹과 어깨동무하면서 따스한 햇볕에 몸을 섞는다.
농촌에는 온 가족들이 논밭으로 나가 보리 새싹사이의 잡초를 골라내느라 곱사등이 된다. 봄비 입에 머금고 땅을 헤집고 나오는 잡초의 행렬에 농부의 손길은 바쁘다. 초등학교시절 보리밭의 잡초 제거를 위하여 가방 대신 호미를 쥐고 학교가 아닌 마을 뒤 논밭으로 향하는 발걸음 아래 노란 민들레꽃이 원망스럽다. 보리 새싹과 함께 뒤섞여 있는 잡초를 뿌리 채 뽑아 흙을 털고 밭이랑 사이에 눕혀놓는 일은 어린 나에게는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보리밭이랑 만큼이나 봄날은 길었다. 끝도 없는 푸른 보리밭사이를 탈출하고 싶은 욕망으로 보리 새싹까지 함께 뽑아버린 어리석은 행동은 지금생각해도 이해가 된다.
젊음의 시간들을 훌쩍 넘기고 노년에 귀촌생활을 하면서 텃밭과 과수원에서 또다시 잡초와 재회할 줄이야... 어릴 적 부모님 지시대로 보리 이외 모든 풀은 아무 쓸모도 없는 잡초로 무조건 뽑아 햇볕에 널브러져 말라 죽게 만들었다. 콩밭에는 콩, 수수밭에는 수수, 목화밭에는 목화 이외의 모든 식물은 필요 없는 잡초로 규정하고 이 세상에서 없어져도 되는 나쁜 것으로만 알았다. 언제 어디서 사람들에 의해 파괴되고 변형 될지 모르는 운명에 처한 잡초는 다양한 생존전략을 구사하면서 불멸의 삶을 살아가고 있음을 이제야 깨달았다.
우리가 곡물을 키우는 논밭이나 도시, 농촌의 문화생활로부터 쓰다 남은 버려진 땅에 잡초라는 야생풀이 자란다. 곡물을 키우는 논밭은 몰라도 버려진 땅에 나는 잡초는 자연회복에 선구적 역할을 하기도 한다. 이 지구상에 사는 모든 식물은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거늘 어느 하나 불필요한 식물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아직은 모르는 그 뭔가의 필요에 의해서 생명을 갖고 태어났을 것이다. 왕후장상이 씨가 없는 것처럼 식물에도 원래 잡초란 없다. 잡초란 우리의 농경문화와 더불어 진화해 오면서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닐까? 소위 잡초라는 식물은 농경의 발달과 변화된 환경조건에 자신의 몸을 맞추지 않으면 도태되기 때문에 환경 적응의 유전자적 진화를 강요받게 되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잡초가 된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논밭이나 빈 공터 어디에서나 자라 농부가 심어놓은 농작물의 자람을 방해하고 괴롭히는 바랭이, 냉이는 수 만종의 종자를 생산하는 다산전략으로 살아남고, 개망초는 생리를 일찍 시작하고 빨리 자식을 생산하는 조산전략을 구사하여 생존해 간다. 쇠비름과 같이 단기간에 한 세대를 완수하는 생활환의 단축 전략은 일년생 식물들이 구사하는 전략이다. 민들레는 씨앗에 날개를 달아 날아다니다가 적당한 장소에 정착하는 소위 낙하산 산포전략으로 먼 곳까지 이동하여 정착할 수 있다. 질경이는 도로변이나 척박한 자리에 눌러 앉아 영역을 확대하는 전천후 침투전략을, 포아풀은 종자나 식물체의 부피를 작게 하는 외소 형이나 독특한 외모를 갖추는 로젯트 형으로 변신전략을 구사하면서 전천후로 농작물 주위를 맴돌고 빈 공터를 찾고 있다. 강아지풀은 다른 풀들은 발도 못 붙이게 하는 독특한 화학물질로 타감 현상과 같은 배타전략을, 쇠뜨기는 배우자와는 관계없이 유성생식에 의한 번식보다는 영양기관으로부터 직접 자식을 생산하는 메카니즘을, 토끼풀은 지하나 지상으로 포복하면서 환경 변화를 감지하면 마디 부분에서 신속하게 뿌리를 내리고 땅을 점령하는 철두철미한 게릴라 전략을, 잔디는 인해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선두주자의 식물이다.
오늘날 강력한 화학제초제를 농경지에 지속적으로 사용하는데도 잡초라고 불리는 식물은 우리가 만든 어떠한 환경의 땅에서도 적응하면서 생존전략을 가지고 있는 불멸의 식물이 되었다. 반면에 제초제에 따른 토양의 오염으로 식탁의 식재료는 급기야 우리의 건강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잡초라고 생각한 식물들이 오늘날 약초와 식재료로 그리고 미래식물자원인 귀초이다. 냉이, 민들레, 쑥, 망초, 쇠비름, 쇠뜨기 등 우리의 식재료가 되고 질병을 고치는 약초와 생약의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귀초든 잡초든 지구 대지의 녹색의 주인공들이고 겨울이 되면 자연히 죽게 되고 그 몸은 온전히 땅으로 되돌아가 토양을 기름지게 만든다는 자연의 이치를 귀촌생활을 하면서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수헌 장은재 이학박사, 대구가톨릭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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