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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집에 돌아와
- 美.明.仁의 집 -
2017년 03월 20일(월) 17:16 [i주간영덕]
 

↑↑ 강문종
영덕군문화예술협회장
ⓒ i주간영덕
이곳 美. 明.仁의 집은 아이들은 물론 아이들의 아이들이 언제든지 찾아와 화사한 맛처럼 쉬다가는 곳이 되길 바라며 지은 집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먼 산에 번쩍이는 빛이 있어 가까이 가보면 깨어진 거울조각이라 한다. 어느 가정이고 걱정 없는 가정은 없다. 어려울 때 여기 와서 지친마음과 몸을 정돈하며 삶의 지혜를 충전하고자 함이다.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람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으니라.
사랑은 오직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고리도전서 13:3~7)

이 말씀을 되새겨 어려운 시험을 이기는 생활로 아버지의 아버지 집이 되어 이어가기를 바라는 것이 나의 간절한 소망이다.

경북 영덕군 영덕읍 남석2길 6-1 대지 121평에 자리한 20평 목조와가 30여 년 전 살던 집에 다시 와서 살게 되니 지나온 일들이 아스라이 주마등처럼 떠오른다. 나이 들었다는 것일까?

이 집은 아이들에게 어릴적부터 보고 듣고 행하는 것의 가장 기본이 되는 하나님을 알게 하고 신앙을 심어 준 곳이다

장모님께서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기도를 새벽 4시가 되면 손수 구세군교회의 끈 달린 종을 치시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던 곳이다.
저의 내자가 어릴 때 편모슬하에서 자란 터라 예절모르는 딸이 되지 않도록 엄하게 키우셨다고 한다.

남들에게 아비 없는 자식소리 듣지 않게 가정교육이 대단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예을 들어 아침에 길을 갈때는 남자가 앞에 오면 자나간 뒤에 가야하고 여자가 방문지박을 밟고 지나다녀서는 안 된다고 가르치셨다.

하나뿐인 자식이라서 교사라고 해서도 달리 봐 주지 않으셨다.
어떤 경우든 여자가 지켜야할 도리(道理)는 철저히 가르치고 반드시 지키도록 하셨던 일들이 어제 같은데 세월이 벌써 많이도 흘러갔다.

지금 이 나라가 혼란한 탄핵사태를 보면 부모의 가르침과 인성교육이 부족으로 내 생각대로 사는 소통이 없는 탓에서 법과 질서를 벗어나다니 보니 전 대통령과 잘못된 정치인들 때문에 나타난 현상인 것 같다.

여기 옛집 마당에 서리받이 큰 감나무 밑 평상에 앉아 이웃사람들과 감자를 삶아 무명밭에서 기른 배추쌈을 먹으며 정담을 나누던 일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특히 기억에 남은 것은 정원석처남이 달산면에 근무할 당시(지금은 경기도 곤지암에 있는 혜원사회장) 이 집에서 정한용 형과 은은한 달빛아래 모여 앉아 인생을 논하던 일이다.
당시 나는 30대 청년으로 꿈과 희망은 컸으나 현실이 뜻대로 되지 않아 갈등이 무척 심했던 시기였다 농촌지도소와 군청에 근무하던 때이다.
또한 정한용형은 이 집에서 함께 살면서 귀한 아들 진영군을 얻었고 또 경사 승진을 맞은 집이다.

그때 정원에 꽃을 잘 가꾸어서 천리향 향기가 지나가는 사람들의 코를 매혹시켰고 가을이면 온 마당에 샛노란 국화 꽃 향기 가득하여 동네 사람들이 “마당이 넓은 꽃집”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그 당시 나는 구세군 영덕교회에서 육성지도한 보이걸스카우트 영덕종고(남여공학시) 연장대 대장으로 활동하여 교사 아닌 지역 대장으로서 대통령 기장을 받기도 했다.
지금은 대원들 모두다 60이 넘었으니 어느 곳에서 의젓한 사회인으로 활동하고 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들 중 유독 기억이 남은 김영택군(울산시에서 우수기업대표)이다. 남정면이 고향인 그들 남매가 학교 다니기에 불편하여 2년간 여기 이 집에서 함께 지내기도 했다.
그 무렵 나는 영덕군청에 근무했는데 같이 근무하던 친구 때문에 영양군청으로 가서 4년 7개월 근무하다 영덕군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서 나는 이 집을 내가 떠난 뒤에라도 누구혼자 집이 아니길 바라기에 美慶, 明求, 仁求 삼명남매의 이름을 따서 美?明?仁집이라 이름 붙였다. 딸, 아들의 아이들의 아이들로 이어져 고향집에 찾아와 쉬었다 가는 곳이 되도록 “사랑하는 아들 딸에게”라는 마음의 글을 정원시비에 남겨 놓았다.

지난 추억중에는 그리운것, 좋은일만 있는것이 아니다 마음아픈 추억도 있다. 구세군 사관생도 실습과정에서 영덕 영문에 발령된 김민제사관(구세군 본영부사령관재임중 퇴임)과 정등자사관 부부가 이 집에서 기거하며 수련중 지품면에 전도 나갔다가 오천재에서 버스 교통사고로 안타깝게 순교 하셨다. 이일로 인해 나의 신앙이 바로 사는데 기초가 된 것이라고 생각해 본다.

앞집 현 야성목욕탕 자리는 중학교 일 년 선배인 고(故)石晴 崔海雲 시인이 살던 집이다. 그 형제분들은 고향을 떠나 지금 다들 어디에서 살고 있는지....
문득 선배시가 생각난다.
「무수한 밤을 두고 별은 지는 것이다
밤마다 피었을 숱한 별은 있고 내가 가는 것이다.....」
崔海雲시인의 시 “행로(行路)”중에서

인간은 어차피 누구나 다 가는 것임을 모르고 그냥 살고 있음을 새삼스레 생각해 본다. 사는 동안 물질의 노예가 되지 않게 살게 해달라고 다짐해 본다.

여기 집 마루에서 마주 앉아 술잔 나누며 밤이 새도록 인생을 논하던 친구들 하나, 둘 거의 떠나고 이젠 몇안되는 친구들만 드물게 남아 소식정도 나누곤 할 뿐이다.
우리들 삼남매를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성으로 키워주신 장모님께서 여행 한번 따뜻하게 모시지 못한채 76세로 세상을 떠나셔서 묘소비석에 “사랑하는 우리할머니”란 글을 손녀손자들이 새겨 놓았다.
이곳 골목 주변이 예전과 다른게 있다면 이기적인 사회 인심도 인심이려니와 주차문제가 어딜가나 큰 문제이다.

대구에서 이삿짐을 챙기던 중 책한권이 눈길을 끌었다. 대구시 교육위원회가 발간한 정화수범사례집에서 “맑은마음” 제2호에 둘째 아들(당시 능인중3년) 인구가 쓴 “사랑의 둥지안에서”란 글이 실려 있었는데 중1때 엄마에게 매를 맞고 난 후 쓴 글이었다.

<상락> 다음날부터 내가 공부에 열중 할 수 있었던 것은 매의 힘이 아니라 그 매에 깃들여진 사랑의 힘, 사랑의 매 때문이다.
그날 밤 나는 우연히 방 바닥에 쓰러져 주무시는 엄마를 보았다. 피곤에 지친 모습이다. 나는 엄마의 머리에 베개를 베어드리며 오늘 자세히 보니 많이 늙으셨다. “엄마! 어제 고마웠어요, 난 알아요! 엄마가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요 공부안한다고 야단치시는 엄마의 마음도 알고요 우리에게 하나라도 더 먹이려고 입을 것 안 입고 먹을 것 안 먹고 아끼시는 엄마의 조건 없는 희생적인 사랑도 난 느껴요 열심히 공부할게요! 걱정 끼쳐드리는 일도 안하고요 엄마 오래 오래 사세요! 언제나 저를 사랑으로 감사 주셔요! 언제나 언제나 말이에요!” 나는 엄의 얼굴에 입을 맞추었다 아무도 몰래 몰래…….

仁求의 글을 보니 아버지로서 다하지 못한 일들이 너무 많았음을 새삼알게 되었다. 늦게나마 뉘우치는 마음으로 손자손녀에게라도 참고로 될까하여 그 책을 챙겨 12월 휴가 때 수원 큰 아들집에 가서 함께 읽어보고 옛 추억에 젖기도 했다.
이렇듯 삼남매가 건강하게 잘자라 사회에 필요한 사람이 된 것을 다시 한 번 감사하며 살고 있다.

지금 이집은 소방도로에 일부 들어가고 남은 100여 평 남짓한 터에 어딘가 모르게 마음에 외로움이 무겁게 자리 잡는다. 나이들었다기 보다는 갈 길을 거의 다왔구나 남은 길이 얼마 남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니 어쩔 수 없는 외로움과 벗하게 되는가보다.
나는 칠남매의 셋째로 태어나 어려움도 많이 겪었지만 다행히 좋은 내자를 만나 지금은 마음 편히 잘 지내고 있다. 정부의 교육개혁에 따라 62세 정년퇴임을 하고 부족한 저를 이것저것 세심하게 도와주니 고맙기 그지없는 일이다.

이곳 美.明.仁의 집은 삼형제는 물론 아이들의 아이들이 언제든지 할아버지 할머니 고향 집을 찾아와 쉬었다 가는 곳이 되기를 바라며 삶의 지혜를 충전하고 기적과 사랑이 역사 하는 곳이 되어 아버지의 아버지집으로 이어지기를 소망하면서…….

저에게 생명의 시간을 주시는 날까지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타나는 모습에서 누가 봐도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분명하게 분별하는 삶으로 머물다 가게 하소서.
주간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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