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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 장군 유적 기념관 관람 감상문 공모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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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12월 29일(목) 14:33 [i주간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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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돌아보는 신돌석 장군의 추억
어린 시절 부터 신돌석 장군의 후예라는 자부심과 명성을 가슴에 새기고 당신의 열혈 의지를 품고 살아 왔었다. 유적 기념관을 일곱 번째 관람하는 오늘 다시금 돌아보는 당신의 겨레 사랑과 외세에 대한 민족의 저항 정신을 되새기고 있다.
장군의 유적기념관이 생기기 전 코 흘리게 어린 시절 신돌석 장군 순국 기념비는 등하교길 가운데 있었다. 영덕읍 우곡리 호호대가 있는 솔밭동산 앞에 위치해 있어 또래 친구들과 장군의 무용담을 나누곤 했으며 특히 기념비 조금 옆에 아름드리 동그란 붉은 바윗돌이 하나 있었는데 우리는 그 돌을 신돌석 장군이 가지고 놀던 ‘짜게(공기놀이 용 돌)’라 불렀다, 더하여 기골이 장대한 장군은 기와집을 단숨에 넘나들고 소나무 위를 휙휙 날아올랐다는 어르신들의 말씀과 민간 설화로 파생된 수많은 이야기를 듣고 우리는 자라났다.
초등학교 재학 시에는 국사시간 유적지 답사를 위해 순국기념비의 삼면에 세로로 쓰인 비문을 힘겹게 빼곡이 ‘노트’에 옮겨 적었던 40년전의 학창시절 추억의 기억도 또렷하다. 80년 초 ‘티브이’에 역사 드라마로 방영된 신돌석 장군에 대한 단막극 드라마는 신장군에 대한 대중적 시각으로 의병활동의 역사성을 평가하고 전국적으로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고 본다. 더하여 “죽었네!, 죽었네! 돌석이는 죽었네!”라는 안타까운 죽음에 대한 ‘드라마’의 ‘나래이션’은 지역사회에 오래도록 회자되기도 하였다.
2, 당신의 생가를 찾아
서울에서 고향에 내려올 때나 명절 때를 비롯 휴가 시에는 ‘블루로드’를 돌아 나는 두 아들이나 조카들을 데리고 이곳에 들러 신돌석 장군이 일제에 대항했던 의병정신과 활약상을 차근 차근 설명하곤 했다. 이는 결코 나의 조상, 내 고향땅의 선조여서가 아니라 이 땅의 주권을 찾고자 했던 향토의 수호정신을 아이들에 전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조선의 신분사회가 유지되던 시절 강고한 벽을 넘어 이곳에서 글공부를 익히고 무예를 닦으며 사재를 털어 그야말로 모든 것을 외세 척결에 바친 그의 숭고한 정신은 고금의 역사를 찾아보아도 그런 예가 많지 않다.
태백산 호랑이의 정신은 그가 가진 나라사랑의 실천이자 애족 애민의 실천이었다. 주어진 공직에 따라 위정자나 군인이 나라를 지키는 것은 당연한 의무이지만 그야말로 충의 하나로 무에서 유의 의병을 규합 의병 대장으로서 외로운 구국의 투쟁에 나선 것은 그보다 몇 백배나 더 어려운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1995년 장군의 생가 복원과 1999년 유적 기념관 개관으로 문화유적지가 조성되어 체계적인 역사 교육시설로 활용 되고 있다. 이곳 민족의 성혼이 서린 이 땅의 수호자로서 일제에 대항한 그 정신은 관람객들에 소중히 전해지리라.
3. 유적기념관이 있는 충의사(忠義祠)에서
삼일운동을 이끈 영해 만세운동과 함께 청사에 빛나는 우리들의 영웅들이 남긴 향토의 성지(聖地)를 돌아본다. '로마'에 대항한 '유태인들의 목숨 건 최후 항전으로 마지막 남은 전사의 자결로 민족의 자존을 지켜낸 ‘이스라엘’의 ‘마사다’를 기억하듯 그가 지키고자 했던 이 땅의 향토 사랑은 오십천 강변에서 의병을 이끌로 고군 분투하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남아 대게나라를 지키던 유적지를 찾아 흔적을 기억하고 더불어 나라 사랑을 실천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특히, 그가 월송정에서 읊조렸다는 (登樓遊子却忘行/등루유자각망행)/(可歎檀墟落木橫/가탄단허낙목횡)/(男兒二七成何事/남아이칠성하사)/(暫倚秋風感慨生/잠의추풍감개생)의 장부가는 누각에 올라 결심을 다 잡는 그의 심경을 대변하고 있음에 향토 서예인 초당 이무호 선생의 힘차고도 단아한 필치로 씌여진 시비(詩碑)는 비분강개의 모습을 그대로 전해주고 있다.
나라가 튼튼하고 국민정신이 강고했다면 나라를 잃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는 강건한 역사의식으로 오늘을 살아가야 할 역사적 과제이자 이성적 삶을 영위하는 존재 의미기도 하다.
우리가 아닌 다음 세대에도 이 땅의 신돌석은 하나가 아닌 수천 수만이 굳건한 마음가짐으로 나라 사랑을 실천한다면 결코 국권을 상실하는 사태는 생기지 않을 것이다, 그야말로 역사의 교훈은 과거의 실패에서 배우는 것이다.
4. 아, 그의 죽음을 잊지 말지어다
나이 서른하나에 같은 민족, 그것도 친인척의 밀고로 도끼에 처참하게 목숨을 잃은 아픔은 임진왜란을 승전으로 이끈 후 적의 흉탄에 장열히 숨져간 이순신 장군이나 금(金)나라를 물리치고 중원의 회복을 꿈꾸던 송(宋)의 명장 악비(岳飛)가 재상 진회(秦檜)의 모함에 독살 당한 것 못지않은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는 것이다.
못 다한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이 땅에 내려 앉아 “아, 형님! 누가 내 배에 칼을 꽂았소!”라고 소리치며 울부짖던 장군의 최후 외침은 그가 떠난 자리를 넘어 메아리가 되어 후세에 큰 울림으로 남아있다.
장군을 해한 그 자리는 전설의 피 빛이 감돈다 했던가? 둘러본 지품면 눌곡리의 현장, 약간의 언덕을 거슬러 올라간 골짜기 왼쪽 개울가 키 큰 미루나무 아래쪽 개울물이 흐르고 이끼 낀 가장자리 붉은 청석바위는 100여년 전 비극의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아픔을 토해 내고 있었다.
향나무는 내려찍는 도끼에도 향을 내뿜는다 했었다, 그 아픈 외침 그 목소리의 서늘한 기운은 불의를 질타하며 언제나 그 자리에 남아 있으라.
5. 장군을 모신 자리에 서다
아이들아!
동작동 국립 현충원, 애국 열사묘역
장군의 묘소 앞에 묵념을 올리고 있단다
나라를 세운 공은
단순히 의병활동을 했다 해서
주어지는 것은 아니란다
반만년의 역사 중
통일국가를 이룬 후
안타까이 주권을 잃은 역사였기에
아이들아!
내나라 땅을 빼앗겼다 하기에
얼마나 가슴 아팠으면 분연히 일어섰을까?
임진왜란이 그러했고
구한말 의병투쟁 또한 그러 했다
나라 잃은 참혹함을 다시는 잊지 말거라
죽임을 당했던 그 아픔보다
아이들아,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그의 뜻을 잇는 결곡한 마음 이란다
그리고 장군이시어 !
금수강산 지켜온 거룩한 정신
이름마저 달라진 대한민국을 지켜보아 주소서
다시는 침략에 무너지지 않는
나라를 지키는 충의로 책무를 새기고
거룩한 성혼으로 지킨 당신을 기억 하겠나이다
통일된 부강한 나라를 만들어
나라사랑을 실천하는 아이들로 키워주소서
아, 태백산 호랑이 신돌석 장군이시어!
2016. 11. 1
경북 영덕군 강구면 금호샛길 37-41 번지 혜원농원내
신석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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