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지역경제 농업종합 정치 행정 지방의회 종합 도정 도의희 도교육청 경북연합 사건사고 소방소식 복지 행사 인물 카메라고발 종합 동영상뉴스 학교소식 사회/문화 여성/환경 사회교육 종합 향우회소식 사회단체 장애인 행사 종합 레져 생활체육 학생체육 행사 종합 여성 환경 행사 종합 데스크칼럼 기자수첩 독자투고 기고 기타 종합 출향인인터뷰 출향인소식 이사람 영덕인 인터뷰 이달의 인물
최종편집:2026-04-26 17:39:30
전체기사
커뮤니티
공지사항
뉴스 > 종합 +크기 | -작게 | 이메일 | 프린트
서예(書藝)는 서법(書法) 따라 쓰는 글자
관어대(觀漁臺) 현판 서법 따라 정확하게 쓴 글씨 논란여지 없어
학문적 근거 갖고 주장하는데 나팔수라니? 엉터리 주장 철회해야
2016년 05월 03일(화) 09:32 [i주간영덕]
 
학문적 근거를 갖고 주장하는데 나팔수라니?
글이란 뭔가? 인간이 서로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부호다.
유니코드란 뭔가? 컴퓨터나 기계가 인식하도록 만들어진 부호다.
이것이 없으면 기계들이 인식을 하지 못해 우리가 말하는 ‘깨어진다.’고 하는 것처럼 이상한 부호나 숫자 등이 나타난다.

우라나라, 중국, 일본, 북한, 대만 등 한자어를 사용하는 나라는 정보교환용 부호라고 해서 서로 상용되도록 부호로 정해 우리나라의 경우 대(臺)를 자판에 치면 기계가 081FA로 명령해 화면대에 (臺)로 나타나고 혹은 인쇄되거나 표현된다.

서로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해 한 것인데 무엇 때문에 이런 인식부호가 생겨났는지도 모르고 이것이 전부 인양 주장하는 것을 보니 뭔 말이지 모르겠다.
이와 같이 기계가 인식하도록 표준화 시킨 부호를 인간이 사용하는 영역까지 적용하는 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에서부터 서예와 한자에 대한 인식이 올바로 알고 있다면 이런 주장을 펼 수 있겠는가?

서예와 한자에 대한 단적인 예는 유홍준교수의 완당평전(완당이 부산에 파는 음식인줄 알까봐. 추사의 다른 호)에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인 서예가인 추사 김정희가 경주 무장사 아미타불 조성기 비문에 대한 이야기를 싣고 있다.

『무장사는 신라 38대 원성왕의 아버지 효양이 숙부 파진찬을 추모하여 지은 절이다. 태종무열왕이 삼국을 통일한 뒤 병기와 투구를 이 골짜기 속에 묻었다하여 무장사라 했다. 이 절은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시 암곡동 무장산에 위치했던 절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중략>
무장사비가 알려진 것은 이계 홍양호에 의해서였다. 홍양호는 금석학에 조예가 깊어 이에 대한 여러 편의 글을 남겼다.

그가 경주부윤으로 있을 때 일을 그의 『이계집』 권16 ‘제무장사비조’에서 무장사비의 비편을 발견하게 된 경위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내가 경주부윤으로 부임하여 고적을 찾아다니다가 ‘신라 무장사에 김생이 글씨를 쓴 비석이 있었으나 지금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한다’는 고노의 말을 듣고 마음으로 개연히 여겨 읍지를 살펴보고 아전을 보내어 찾아보게 하였다......
.....며칠 뒤에 아전이 돌아와서 말했다. “절 뒤에 콩가는 맷돌이 있었는데 脈理가 평범한 돌과는 달랐으므로 세워 일으키고 그 뒤를 살펴보니 바로 그 절반이 부러져버린 오래된 비석이었습니다.”내가 듣고 기이하게 여겨서 장인을 보내어 몇 본을 탁본 하여 오게 했더니, 과연 무장사비였다.……뒤에 어느 장서가가 일찍이 무장사비의 전면과 후면이 모두 있는 탁본을 소장하고 있다고 들었으나 지금 내가 탁본한 것은 전면의 절반뿐이고 후면은 콩을 가느라 마별되어 버렸으니 더욱 더 안타깝다. (이종문, 한문고전의 실증적 탐색, 계명대, 2005, 261 쪽)

추사도 이 무장사비탁본을 입수하여 옹방강에게 보냈는데 옹방강은 김육진이 쓴 것이 아니라 왕희지의 「난정서」와 회인이 집자한 「왕희지성교서」의 글씨를 그대로 본받은 동방의 훌륭한 비문이라는 것이다. 그의 아들 옹수곤 또한 신라의 비편에서 “왕희지의 좋은 글씨 283자와 반자(半字)를 얻었다”는 글귀를 남길 정도로 높이 평가하였다.<중략>
추사 김정희는 깨진 비편 하나라도 있을까 해서 암곡동을 찾았다. 풀섶에서 비편을 발견하고는 기쁜 나머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추사는 깨진 그 비석 옆에 다음과 같은 글을 새겼다.
‘이 비의 서품은 당연히 「낭공대사백운서운비」보다도 위에 있다할 것이며, 난정첩에 나오는 ‘숭’자 머리가 점 3개로 씌여진 것이 오직 이 비석에서만 완전하다. 옹방강 선생은 이 비를 고증하기를 동방 문헌에서 중국이라고 칭하는 것에 이 비만한 것이 없다고 하셨다. 나는 두세 번 다시 쓰다듬어 보았다. 정축년 4월 29일 김정희쓰다.’
이어 두 번째 찾아낸 비편의 부기에 그리고 나서 또 다른 비편 하나를 더 찾았다. 거기에도 추사는 ‘저승의 옹수곤을 일으켜 금석의 인연을 함께하지 못함이 애석하다’라는 글귀를 새겨놓았다. 이 두 비편은 국립 중앙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여기서 우리가 컴퓨터로 인식한 숭(崇)은 이 글자 밖에 없다. 그러나 서예의 대가인 추사는 ‘숭’자 머리가 뫼산(山)자가 아닌 점 3개로 씌여진 것이 오직 이 비석에서만 완전하다며 기뻐한 것을 보면 옛 선인들이 쓴 글자에 얼마나 집착을 갖고 있는지 짐작이 간다.
이와 같이 한자는 옛 조상들이 새로운 글자로 쓴 비나 문서가 나오면 그것이 새로 인증 받는 것으로 서가에서는 통하고 일반 대중들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 내려온 과정이다.

서예에 입문하려면 올바르게 글을 쓰는 선생 밑에서 올바르게 배워야 한다.
그 것이 안 되면 글이 아니라 아무것도 되지 않는다.
올바르게 배우려면 글의 기본이 되는 법첩(法帖)이 있어야 하는데 전서(篆書)는 주나라 석고문(石鼓文), 예서(隸書)에는 조전비(曺全碑), 해서(楷書)는 당나라 시대 구양순의 구성궁예천명(九成宮醴泉銘), 화도사비(化度寺碑), 우세남의 공자묘당비(孔子廟堂碑)가 있고 행서에는 왕희지의 난정서(蘭亭序)가 있으며 그 밖에도 한나라 시대 장천비(張遷碑), 북위(北魏)의 용문 21품 등 처음 배우는 사람이 임서해야 할 기본법첩이 있다.

필자도 처음 예서의 조전비라는 첩을 본적이 있는데 나중에 운림필방에서 출판한 조전비 법첩을 보고 글자가 비슷하지만 많이 틀리는 것을 알고 법첩의 중요성을 깨달은바 있다.
이를 본으로 하여 같이 따라 쓰는 것을 임서라 하고 이를 중요시 여기고 있는데 이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글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만큼 법첩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렇게 중요한 법첩을 수백년전 비문이나 선조들의 글자에서 찾는 것이 서의 기본인데 이를 알지도 못하면서 무시하고 기계에서 뽑아 쓰는 글자를 갖고 서예를 논한다는 자체가 창피하고 남세스러운 일이다.

추사는 잡저라는 글을 통해 글과 시문에 관해 많은 것을 남겼으며 그중 “한ㆍ위(漢魏) 이하 금석(金石)의 문자가 수천 종이 되어 종ㆍ색(鍾索) 이상을 소급하고자 하면 반드시 북비(北碑)를 많이 보아야만 비로소 그 조계(祖系)의 원류의 소자출(所自出)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악의론(樂毅論)은 당의 시대부터 이미 진본은 없어졌고 황정경은 육조 시대 사람이 쓴 것이며 유교경(遺敎經)은 당 나라 경생(經生)의 글씨이며, 동방삭찬(東方朔贊)ㆍ조아비(曹娥碑) 등의 글씨도 전혀 내력이 없으며, 각첩(閣帖)은 왕저(王著)가 번모(飜摹)한 것으로써 더욱 오류(誤謬)가 되어 이미 당시에 미원장(米元章)ㆍ황백사(黃伯思)ㆍ동광천(董廣川 동기창(董其昌) 같은 이가 일일이 박정(駁正)한 바 있으니 중국의 유식자들은 악의ㆍ황정 등의 서로부터 각첩(閣帖)에 이르러는 다 말하기조차 부끄럽게 여기는 것이다. 대개 악의ㆍ황정 등의 서는 만약 근거될 만한 진본이었다면 당의 구ㆍ저ㆍ우(虞 우세남(虞世南))ㆍ설(薛 설직(薛稷),ㆍ안(顔 안진경(顔眞卿))ㆍ유(柳 유공권(柳公權))ㆍ손(孫 손건례(孫虔禮))ㆍ양(楊 양응식(楊凝式))ㆍ서(徐 서계해(徐季海))ㆍ이(李 이옹(李邕)) 여러 사람들의 쓴 글씨가 하나도 황정ㆍ악의와 같은 것이 없으니 그 황정ㆍ악의로부터 입문하지 않은 것을 입증할 만하며 다만 여러 북비와는 인과 인이 서로 합할 뿐만 아니라 방경(方勁)하고 고졸(古拙)하여 모릉(模綾)이 원숙한 것은 없다.

근일에 우리나라에서 일컫는 서가의 이른바 진체(晉體)니 촉체(蜀體)니 하는 것은 다 이런 것이 있다는 것조차도 모르며 곧 중국에서 이미 울 밖에 버려진 것들을 가져다가 신물(神物)과 같이 보고 규얼(圭?)과 같이 받들며 썩은 쥐를 가지고서 봉새를 쪼으려 든다[腐鼠?鳳]는 격이니 어찌 가소롭지 아니한가.”라고 고대 법첩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렇게 법첩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법첩을 모르고 글을 쓰면 안된다고 한 그 중요한 법첩에 대(臺)자가 수없이 많이 있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혹여 초서로 쓴 현판을 걸었다면 컴퓨터가 인식하지 못하고 옥편이나 자전에 없어서 어떻게 할 뻔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한민국 사람은 대한민국 법에 따라 생활하면 되고 미국사람은 미국법에 따르면 되고 국회의원은 국회법에 따라 의사활동을 펼치면 되고 의사는 의료법, 변호사는 변호사법에 따라 행하면 되는 것처럼 서예를 하는 사람은 서법(書法)에 맞게 글을 쓰면 된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서법에 맞지 않고 쓰면 서가에서 인정을 받지 못한다.
서법에 따라 정확하게 쓴 현판을 잘못되었다고 하니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가 있나.
이런 말은 차마 하고 싶지 않았는데 학문적인 내용을 주장하는 것을 군청의 나팔수라고 말하는 사람은 글 쓰는 사람이 전부 당신처럼 남의 부탁을 받고 아무 생각 없이 이름만 올리는 것으로 알고 있어 나팔수란 말을 했는가 본데 이 문제는 당신 주장처럼 학문(學問)에 관한 일이기 때문에 항문(肛門)이 아니라 학문(學問)을 이루기 위해서 조사하고 연구하고 밝히는 것이다.

석포(昔圃)선생은 필자의 이런 모습을 보고 추사가 쓴 신안구가(新安舊家)를 보여주며 신(新)자가 설입(立) 밑에 나무목(木)인데 여기서는 아닐미(未)로 쓰도 어느 누구고 틀렸다고 하는 사람이 없으며 최고의 글씨라고 찬양하고 있다고 했다.
서(書)의 기본도 모르는 사람들과 서(書)에 관하여 이야기 한다는 것이 내 자신이 옳은지 의문이 든다.

ⓒ i주간영덕
주간영덕 기자  
“언론사 & 단체 명훈”
- Copyrights ⓒi주간영덕.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i주간영덕 기사목록  |  기사제공 : i주간영덕
 
이전 페이지로
실시간 많이본 뉴스  
국민의힘, 광역·기초의원 공천 확정..
영덕군, 2026 지역 일자리 목표..
"함께 가면 역사가 된다" 한국지역..
원황초, 상반기 문화예술 초청공연 ..
영덕지역자활센터, 홀몸 어르신 대상..
영덕군, 2026 기초 영농 기술교..
경북·영덕 장애인 연합, ‘제46회..
영덕군 ‘행복 선생님’, 산불 예방..
영덕교육지원청, 2026년 학교운영..
영덕군, 고유가 피해지원금 오는 2..

최신뉴스

강구면 여자 전문의용소방대, 하..  
서남사 병오년 춘계 성지순례 및..  
영덕교육지원청, 2026학년도 ..  
영덕군, 일반음식점 위생교육으로..  
영덕보호관찰소, 딸기농가 일손돕..  
산림청 영덕국유림관리소, 수급업..  
선생님의 교육활동 보호에 앞장서..  
조주홍, 국민의힘 영덕군수 후보..  
영덕경찰서, 노인 안전 사각지대..  
영덕군, 신규 원전 전담 조직 ..  
영덕보호관찰소, 보호관찰위원과 ..  
영덕군, 고유가 피해지원금 오는..  
강구농협, 다문화 가정 ‘모국방..  
"함께 가면 역사가 된다" 한국..  
영덕군 ‘행복 선생님’, 산불 ..  


인사말 - 광고문의 - 제휴문의 - 이메일주소 무단수집 거부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기사제보 - 구독신청
 상호: i주간영덕 / 사업자등록번호: 173-28-01219 / 주소: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강영로 505 / 발행인.편집인: 김관태
mail: wy7114@hanmail.net / Tel: 054-732-7114, 054-734-6111~2 / Fax : 054-734-6113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 경북, 아00130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관태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