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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정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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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7일(목) 09:45 [i주간영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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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 i주간영덕 | | 사랑이란 무엇인가? 우리가 찾는 사랑은 우주만물, 일상생활 속에 가득하다. 그것은 우리가 움직이거나 멈출 때, 말하거나 경청할 때, 사람을 만나거나 사물을 접촉할 때 있는 것이다. 생활 속에서 부르면 ‘예’하고 대답하는 것과 같은 일상적인 일이다. 이처럼 사랑은 우주, 지구 어느 곳에서나 시공을 초월하여 존재하며 그 바탕에서 만물이 생존한다. 유교의 도덕률에도 인애(仁愛) 즉 사랑을 자연의 법칙(天人合一思想)과 동일시하고 있다.
위대한 사랑의 힘은 남을 위해 나를 희생할 때 비로소 나타난다. 사랑은 경쟁 또는 적을 말살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에게 용기를 주고 그를 감화하고 그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사랑은 또한 자기희생인 동시에 자기완성이다. 남을 위하고 민족과 조국을 위해 나를 희생하는 것이 살신성인(殺身成仁)이요 자기완성이다. 성서에도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 것이니라.”라는 말씀은 좁은 이기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는 가운데 인격으로서의 자기희생으로 자기완성을 형성해 가는 개인이 주체가 되는 실천적인 사랑일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 사랑과 마찬가지로 정의가 없으면 금수와 같은 본능과 약육강식의 사회가 될 것이다. 때문에 시대와 국가에 따라 개념의 차이가 있지만 법과 도덕에 반하는 불의와 불선을 보고 응징하여 바른 사회 구현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우리는 감각적인 자극에서 오는 것이라면 배우지 않더라도 저절로 알고, 힘쓰지 않더라도 표리가 같기 때문에 저절로 좋아하거나 싫어하게 마련이다. 그러나 정의에 있어서는 그렇지 않다. 사람은 배우지 않으면 알 수 없고 힘쓰지 않으면 행할 수 없다. 때문에 배우면서 행하고 실천하면서 배운다. 유한한 인간은 영원한 창조주처럼 순수한 절대가치를 소유할 수 없고 언제나 상대적가치의 실천에 임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정의는 어려운 실천 덕목이며 국가나 법인이 주체가 되어야 한다.
사랑은 한편으로 정의와 대립한다. 사랑과 정의는 양립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랑은 불의를 용서하고 함께하지만, 정의는 불의를 증오하고 응징하기 때문이다. 정의는 평등을 전제로 한다. 평등은 권리도 책임도 동시에 갖는 공평을 말한다. 맹자는 인간은 본래부터 수오지심(羞惡至心)즉 불의를 부끄러워하고 악인을 미워하는 마음의 의(義)라는 것이 있다고 했다. 그러므로 사랑도 정의도 인간 본성으로 함께 갖고 태어났다. 그래서 우리 인간은 정의가 결여된 사랑은 분별없는 사랑이라 할 수 있다. 사랑과 정의의 대립에서 인정이냐 의리이냐 선택의 문제가 일어난다. 정의는 맹목이요 사람을 보지 않고 시비를 엄정하게 심판한다. 이와 반대로 사랑은 사람을 보고 심판하지 않는다. 정의는 ‘눈에 눈으로 이에는 이로’ 심판하는 것이지만 사랑은 ‘오른 뺨을 치는 자에게 왼 뺨을 내 주는 것’ 용서의 마음이다.
이와 같이 사랑은 정의와 대립될뿐더러 마침내 자기모순에 빠지게 된다. 가족을 위해 나를 희생하고 대의를 위해 부모를 희생한다. 이 희생의 범위는 무한히 확장하여 인류를 위해 조국을 희생해야 할 것인가? 사랑은 무한하기 때문에 사랑의 확장을 단지 인류애에 멈추지 않고 이것을 불교와 같이 만물에까지 미치게 한다면 우리는 거의 살아갈 방도를 잃어버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과 정의의 대립 내지 사랑의 자기모순을 극복하는 길은 오직 사랑하는 길 밖에 없을 것 같다. 사랑의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감은 처음에 사랑과 대립하던 정의도 점차 사랑 속에 녹아 들어갈 것이며 그것은 사랑에 의한 정의인 동시에 정의에 의한 사랑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잘못을 용서하는 마음의 사랑과 불의를 응징하는 마음의 정의는 대립관계에 있지만 우리는 사랑이 최고의 가치이며, 정의가 최고의 덕목임은 분명하다. 불의에 동조하여 선량한 사람이나 약자를 괴롭히는 악인을 보고 외면 한다면 정의의 사회는 무너질 것이다. 공정한 분배, 공정한 참여기회 제공 등 경제적, 정치적 정의의 실현 등 수많은 일상생활을 정의로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먼 과거에서부터 오늘날까지 정의란 이름으로 불의를 응징하여 왔지만 응징의 대상은 좁혀지기보다 넓어지고, 줄어들기보다 많아지고 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을 다 응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는 있다. 사랑과 정의의 상극은 오직 사랑을 통해서만 해소 될 것이다.
인간은 영원하지도 않으며 기쁨(喜), 성냄(怒), 슬픔(哀), 두려움(懼), 사랑(愛), 악의(惡), 욕심(慾)이라는 칠정(七情)의 감정을 가지고 있는 미약한 미완성 존재이다. 정의가 있는 사랑을, 사랑이 있는 정의가 정의만 있는 칼날 같은 심판보다 낫다. 사랑의 아름다움이 있는 용서가 더 값진 행복한 삶의 바탕이 아닐까?
수헌 장은재 이학박사, 대구가톨릭대학교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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