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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시대적 패러다임
2015년 07월 07일(화) 17:04 [i주간영덕]
 
한수태 강북포럼 회장, 수필가

2015년은 광복 70년, 분단 70년의 해로 지난 7월 1일 제17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이하 민주평통) 출범식이 있었다.
민주평통 제17기 자문위원은 각 분야별 국내외 동포 1만9947명의 방대한 조직으로서 박근혜 정부의 통일정책에 대해 역동적으로 법률 자문을 하게 된다.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통일정책은 남북한 전 국민을 위해 행복한 통일을 이뤄내는 것이 목표다.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세계 수출 11위권, 국민소득 2만 달러, 일등상품 100개 이상 보유국, 올림픽 개최국, 월드컵 축구대회 개최국,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한 나라, G-20 의장국 등 일일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세계에서 주목을 받는 나라가 되었다.

그러나 우리 국민들 중에는 상식 없는 작태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모습을 흔히 보게 된다. 예를 들면 북한의 잠수정 공격으로 천안함이 폭침됐다는 사실이 국내 과학자들과 세계 전문가와 석학들의 조사로 밝혀지자 “천안함은 미국 잠수함과 충돌로 좌초된 것이다”라는 식으로 헛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중학교 교사가 어린 학생들을 데리고 화문산 등으로 데리고 다니면서 빨치산의 몰락을 애도하는 모습도 보여준 적이 있다.

지금 북한의 김일성 3대 세습은 세계인들에게 조롱거리이자 희극이며 우리 민족의 비극이다. 역사는 독재자의 장기집권은 절대저항을 받는다는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 오랜 독재정부에 대해서는 국민들로부터 저항을 받으며 이미 정부는 생명력이 끊기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튀니지와 이집트 정권이 독재에 의해 국민의 저항으로 정권을 잃었고, 리비아의 카다피도 태풍 앞에 등잔불과 같은 운명이 되었다. 이어서 시리아, 예멘이 흔들리고 있다.

아랍은 종교민족이다. 그들은 빵이 없어도 살지만 알라 신이 없으면 죽는다. 아랍인에게 이슬람교는 종교 이상의 것이다. 독재자들은 그런 점을 이용해서 30~40년씩 군림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 나라에서도 국민들이 굶주림을 견디지 못해 목숨을 걸고 저항하며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리비아의 카다피는 무서운 집념의 사람이다. 자기가 목적하는 것을 위해서는 국민 전체를 죽이고도 권력을 유지하고자 했던 독재자다. 일본 근대 국가를 건국한 오다 노부나가는 “군주는 국민을 배부르게 먹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했다.

6.25 전쟁이 한창 치열하던 1951년 소련의 제안에 따라 양 측은 판문점에서 휴전회담을 열었다. 1953년 7월 27일 일단 양 측의 전투가 끝나고 휴전에 들어갔다. 그 세월이 70년이었고, 미완성의 통일을 이뤄내기 위해 지금 우리는 여기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말대로 휴전일 뿐 대립이 끝나지 않았다. 휴전선 155마일을 경계로 하여 남북한은 여전히 대치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세계 역사는 80년대 이후 동서 양 진영 사이에 화해무드가 조성되었고, 그 결과 분단되었던 독일의 통일과 구 소련의 붕괴가 있었지만 한반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분단국가로 남아 오늘날까지 살벌하게 대치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남북통일을 이야기할 때마다 독일 통일을 빠뜨리지 않는다. 1961년 미국에서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취임했다. 케네디 대통령과 소련의 후르시초프 대통령은 빈에서 미·소정상회담을 열어 베를린 사태를 논의하자고 미국에 제안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대로 그로부터 2개월 후인 1961년 8월 베를린 장벽이 구축되었다. 분단 이후 동독은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더 이상의 발전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답보 상태였으나 서독은 착실하게 국가경제가 살아났다.

우리는 위에서 말하고 있는 부분들을 지금 북한의 현실과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1954년 파리협정에 의해 1955년 비로소 주권회복을 한 서독은 1970년 소련과 무력 불사용 협정을 체결하고 폴란드와 조약에 의해 오데르강과 나이세강으로 국경선을 확정했으며 1972년 양 독일 협정에 의해 동·서독이 상호 국가로 공인을 받게 되었다. 이듬해엔 각기 유엔에도 가입하게 된다. 이 같은 정책은 동·서독간의 긴장완화에 크게 기여하였다고 본다.

소련의 고르바초프에 의한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은 동구권 국가에 혁명을 가져다줬다. 1989년 10월 9일 라이프치히에서 “자유, 민주”를 외치며 10만 군중의 시위가 시작되면서 동독은 마침내 그해 11월 베를린 장벽을 허물고 만다. 그리고 꼭 1년 만에 서독의 흡수통합으로 독일 통일이 이뤄져 하나가 된다. 1990년 10월 3일 0시 베를린 브란덴부르크 문 옆에 위치한 제국회의 의사당 광장에는 수십만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거기서 헬무트 콜 총리, 빌리 브란트 전 총리, 동독의 바이츠 제커 대통령, 데메지에르 총리, 인민회의 의장 자비네베르그만 폴 여사 등 동·서독 지도자들이 나란히 도열해 있었다. 광장의 국기 게양대에 독일 국기인 삼색기가 천천히 게양되는 엄숙하고 장엄한 순간에 군중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독일국가를 합창했다. 뜨거운 눈물이 넘쳐 흐르는 가운데 ‘자유의 종’이 은은히 울려퍼지면서 자유가 이르렀음을 알렸다. 수많은 군중의 함성이 터지고 폭음과 함께 불꽃이 밤하늘을 붉고 아름답게 수놓는 가운데 군중들은 비로소 망치와 장비를 가지고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기 시작했다. 당시 베를린 장벽의 경비를 감당하고 있던 소련 군인들은 무질서하게 군중들이 소동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한 발의 실탄도 발사하지 못했다. 마침내 동·서독 분단 45년간 같은 민족이 대립하고 적대시했던 역사는 종말을 고했다.

베를린 장벽이 생긴 이유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독일이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등 4대 강대국에 의한 분할점령 때문이었다. 수도 베를린 또한 분할 점령된 성이 되었다. 그후 서독에서 베를린으로 가려면 소련 점령지역을 통과해야만 했다.

지금 세계의 석학들 가운데는 독일의 통일을 우리나라의 통일에 견줘 해석하려는 학자들이 많다고 본다. 우리도 남북분단 70년이 되었다. 여기서 해석이야 각자 다르게 할 수 있다 하더라도 분명한 것은 우리나라는 헌법에 의해 통일돼야 한다고 본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염려스러운 것은 우리 사회 구석구석에 뿌리내리고 있는 불신이다. 게다가 비협력의 병폐도 심각하다. 우리는 이것을 고치지 않으면 통일을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 사회 전반이 협력이 되지 않고 있다. 국회에서는 여야가 자기네들끼리 싸움질하는데도 시간이 모자랄 지경이고, 노동 현장에서는 노사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기 힘들다. 지역간에도 신뢰가 깨어졌다. 자신의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통의 부재다, 불통이다 하며 우겨댄다. 소수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다수가 상당한 고통 속에서 침묵해야 하는 사회, 불통을 제공하는 집단들, 사회에 불신을 조장하고 자기네들의 불통을 항변하는 그 자리에는 어김없이 사회 지도자들이 머리띠를 두르고 서 있다.

독일이 45년간 견고하게 가로막고 있던 베를린 장벽을 국민들의 힘으로 무너뜨리기 전에는 크나큰 고통 속에서 점점 이질화되어 가는 비극의 현장으로 주목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1990년 10월 2일 저녁 9시 동독의 샤우스판 하우스에서는 동독 정부 해체식이 거행되었다. 게반트 하우스 오케스트라가 쿠르트 마주르의 지휘로 베토벤 교향곡 제9번 ‘합창’을 연주했다. 그리고 다음날인 1990년 10월 3일 0시를 기해 ‘독일민주공화국’(동독의 국호)는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서독으로 흡수통일된 ‘독일연방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새 나라가 출발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통일된 독일은 현재 유럽에서 제일 힘 있는 국가, 부채가 없는 국가로 발전했다. 그래서 통일은 우리에게도 대박이 될 수 있다. 우리 사회도 통일을 만들어내고 통일을 받아들일 수 있는 국론의 결집이 필요하다. 그래서 민주평통 자문위원들의 위치는 막중하다고 할 수 있다. 통일은 어느 날 갑자기 산사태처럼 올 수 있기 때문에….
주간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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