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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획특집-위기의 대한민국, 다산에게 길을 묻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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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06월 01일(목) 08:52 [i주간영덕]
 
정치란 무엇인가?편집자 주) 지금 우리 대한민국은 도를 넘는 극단주의와 황금만능주의, 도덕불감증,“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되고, 정직하게 양심껏 순리대로 살아가면 손해 본다”는 식의 오도된 가치관이 정치 사회 문화 종교 등 모든 분야를 지배하고 있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은 법인데 이 같은 현상은 사회지도층으로 올라 갈수록 더 심각하다. 한마디로 위기 상황이다. 작금 대한민국은 200년 전 다산선생이“이대로 가면 조선은 반드시 망한다”며 개혁이나 경장보다 더 강력한 변통(變通)을 강조했던 시대 상황과 너무나 흡사하다. 이에 본지에서는 기획특집으로“다산정약용의 위민변통사상(茶山 丁若鏞의 爲民 變通思想)”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던 다산변통사상연구소장 마중물 김만수 박사와 함께 그 해법을 찾고자 한다.

ⓒ i주간영덕

마중물 김 만 수(정치학박사)
전) 경기대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현) 다산변통사상연구소장
현) 경상북도인재평생교육진흥원 경북학숙본부장

ⓒ i주간영덕

▲ 다산이 해배를 앞두고 강진생활의 흔적을 남기기 위해 바위에 새겨놓은 <정석(丁石)> 앞의 마중물 김만수 박사. 丁石은 다산초당 왼편에 자리하고 있다.

인류 역사 이래 지금까지 정치란 무엇이며, 어떤 정치체제가 바람직한 것인가에 관한 논의는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다. 그러나 아직도 어떤 정치체제가 최상의 정치체제인가에 대한 확실한 해답은 없다. 때문에 정치개념 또한 정치학자 수만큼 많지만 정치체계분석을 가장 먼저 정치학에 도입한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를 정의하기를 “정치란 ‘가치의 권위적인 분배’이며, 가치의 권위적 배분은 정책을 도구로 할 수 있다”라고, 막스베버는 “국가의 운영에 영향을 미치는 활동”으로, 미셀 푸코는 “모든 인간관계에 내제된 권력관계”라고 정치를 개념정의 하였으며, 이 세 사람의 개념정의가 가장 많이 인용되고 있다.

이와 관련 공자의 견해는 어떨까? 제후가 공자에게 가장 잘된 정치가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가 답하기를 “군군 신신 부부 자자(여유당전서 論語古今注 卷1, 「爲政」, “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曰:“君君,臣臣,父父,子子.” 此所謂爲政以德也.)”라고 하였다. 이를 두고 주자는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답고, 아버지는 아버지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잘된 정치다”라고 해석한 반면, 다산은 “잘된 정치란 임금은 임금의 도리를 다하고, 신하는 신하의 도리를, 아버지는 아버지의 도리를, 자식은 자식의 도리를 다할 때이다”라고 재해석 하였다. 이는 <주역>에서 말하는 인(仁=人+二) 음양과 상호대대의 원리에 근거한 해석이라 할 수 있다.

上向 漸層式 代議民主制를 지향한 茶山

그렇다면 다산이 지향한 이상적 정치체제는 무엇인가?
다산이 주창한 정치체제론의 핵심은 기존의 동양적 정치질서와는 상반되는 주장을 펴고 있다는 점이다. 즉 민본을 넘어 민이 주체가 되어 선거를 통해 상향식-단계별로 치자를 뽑고, 모든 법제정 및 상제 또한 민의 의사를 바탕으로 상향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그의 주장은 맹자(孟子)의 “백성이 가장 귀하고, 사직이 그 다음이요, 임금이 가장 가볍다.(孟子, 「盡心」下, 14章. “民爲貴, 社稷次之, 君爲輕.” )”는 민본사상(民本思想)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러나 유가의 전통적 민본사상은 위민(爲民, for the people)에 국한되어 있다면, 다산은 여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민의 뜻에 의한(of the people), 민이 주체가 된 정치체제(by the people)를 지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진보적이며, 독창적인 주장이라 할 수 있다.

다산이 독창적으로 주창한 ‘민에 의한 상향식 정치시스템’의 의미와 개념은 점층(漸層, ▂▄▆█)이란 점강(漸降, █▆▄▂)의 반대 개념으로, 마치 층계를 하나하나 밟아 올라가듯이 낮은 단계에서 시작하여 한 단계 한 단계 높아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즉 다산이 논하고자 했던 정치 시스템은 민이 주체가 되어 이장에서 군주에 이르기까지 아래서 위로 단계별로 치자를 뽑는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하이상(下而上)’ 이란 술어를 사용했다. 아울러 다산이 구상했던 정치시스템은 민주적 절차에 따라 선거를 통해 자신의 권리를 대신해줄 치자를 추대하고, 민의 권리를 위임 받은 장(長)들은 상위 치자의 선출은 물론 모든 법제정 병제 또한 민의 의사를 바탕으로 점층식으로 이루어져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대의민주제(간접민주제)와 가깝다. 따라서 다산이 지향한 정치 시스템은 아래서부터 위에 이르기까지 단계별로라는 의미의 ‘점층’과 직간접 선거방식을 통한 ‘대의민주제’이다.

하향식 정치체제는 부패의 온상이다

그렇다면 다산의 ‘점층식 대의민주제’ 변통사상은 어떤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일까?
그것은 바로 다산이 조선 사회가 썩고 병들어 국력이 쇄약해지고 민이 벼랑 끝으로 내몰린 근본 원인을 기존의 잘못된 법과 제도 때문이라고 보았고, 이 같은 근원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제시한 이론이 ‘점층식 대의민주제’이다.

「원목(原木)」, 「전론(田論)」, 「탕론(蕩論)」, 「원정(原政)」을 통해 제시한 이 같은 주장은 다산의 천재적 상상력과 결합된 초 진보적 정치논리다. 즉 “태초에는 가족 단위의 民만 존재했기 때문에 목(牧)이 필요 없었지만, 점차 무리의 규모가 커지면서 그 집단 내의 분쟁을 조율하고 해결하는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로 했을 것이고, 그 과정에서 자연발생적으로 자신의 권리를 대신해줄 치자가 생겨나게 되었다. 이를 시발로 작은 단위에서 큰 단위로 즉 ‘이정→당정→주장→국군→제후→천자(황제)’ 순으로 집단을 이끌어갈 치자가 생겨났을 것이다”라는 것이 다산의 가설이다. 이 같은 다산의 발상과 주장은 기존의 권력구조인 ‘중앙집권적 하향식 정치체제’와는 상반되는 개념이다. 바꾸어 말하면 그의 이 같은 발상과 주장은 당시 조선의 정치상황하에서는 도저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이른바 역도행위에 해당하는 초 진보적 발상이다.

一表二書는 상향식 대의민주제 실현위한 방법론

다산의 천재성과 초 진보적 발상인 「원목」, 「탕론」의 급진적인 정치사상은 다산이 혈기 왕성하던 30대 젊은 시절의 구상이긴 하지만 「원목」, 「탕론」, 「전론」, 「원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제목만 다를 뿐 내용적으로는 서로 일맥상통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이 네 편은 다산 변통사상의 총론격에 해당하며, 1표2서(一表二書)는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일종의 방법론이자 실천방안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그의 급진적 변통사상인 ‘점층식 대의민주제’ 정치행태는 단순히 30대의 젊은 혈기를 빌어 1회성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라는 것은 그가 만년에 저술한 매씨서평(梅氏書平) 「제명론(帝命論)」과 「일주서극은편변(逸周書克殷篇辨)」에서도 그 기조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점이 이 같은 사실을 증명해 주고 있다.

다산의 「원목」에 의하면 태초에는 백성만 있었다. 그러나 생활하면서 이웃과 다툼이나 분쟁이 일어났을 때 자신들의 무리들 중에 이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을 것이며, 이 같은 인간역사의 발전단계에서 자연스럽게 牧이 출현하고 또 법과 제도가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이 다산의 사회 역사관이다. 그런데 이 같은 다산의 주장을 두고 기세춘 등 일부학자들은 서양의 사회계약론과 동일선상에서 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매우 잘못된 해석이다. 사회계약론의 핵심은 인민들이 서로가 서로에게 나라를 만드는데 합의한 것을 정치사회의 계약으로 본 것으로, 아직은 통치자를 정하지 않은 상태이다. 따라서 다산이 「원목」과 「탕론」, 「전론」 등에서 주장한 내용은 “나라를 세우는데 동의한 것이 아니라, 나의 권리를 너에게 믿고 맡길 터이니 당신이 나의 권리를 대신 행사해 달라”는 일종의 정치권력의 신탁행위이자, 권력의 탄생과정과 점층식 대의민주제를 논한 것으로 보아야한다는 점에서 서양의 사회계약론과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리더 탄생’의 가설을 정립한 다산의 천재적 상상력

즉 다산의 주장에 따르면 마을 사람들의 갈등과 분쟁해결을 위해 民에 의해 추대된 최초이자 최소 단위인 마을 단위의 牧은 이정(里正)이었다. 이후 집단사회구성단위로 확대에 상응하여, ‘이정⇨당정⇨주장⇨국군⇨방백(제후)’ 순(점층식)으로 상위집단의 목을 뽑았고, 최종적으로 그 제후들이 ‘황왕(황제)’을 뽑았으며, 치자의 정상에 선 ‘황제’가 다름 아닌 ‘천자’라는 것이다. 이것은 통치영역의 규모가 ‘아래로부터 위로’ 확장되어 가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설명한 것으로, 결론은 ‘황제’ 역시 근본은 ‘이정’으로부터 기원하였기 때문에 牧은 당연히 민에 의한, 민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치자란 존재는 민의 갈등과 분쟁을 조정하고 해결하는 권리를 위임받은 대표자의 지위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만약 통치자인 목이 자신에게 부여된 분쟁조정능력을 상실할 경우 민은 당연히 그 지위를 박탈시킬 수 있다는 것이 다산의 논리다. 특히 주목할 점은 「원목」뿐 아니라 「탕론」, 「전론」, ????매씨서평????, 「여전제」, 「병제」, 「상제」 등에서도 그 성격에 따라 치자의 명칭만 다를 뿐 그 절차는 일관되게 점층식 대의민주제를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이정에서 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치자들이 점층 대의민주제 방식에 의해 추대되었듯이, 입법과정 또한 이정이 민의 뜻을 받들어 민에게 유리하도록 법을 만든 후 ‘이정⇨당정⇨주장⇨국군⇨방백⇨황왕’ 순으로 법이 제출되고 제정되었기 때문에 당시의 법과 제도는 당연하게 민의 뜻이 가득 찬, 민의 편익을 위한 법과 제도였다는 것이 다산의 주장이다. 그러나 한(漢)나라 이후에는 스스로 황제가 되어 마음대로 제후(諸侯)를 세우고, 그 제후들은 또 자기 사람들을 골라 주장(州長)으로 세우고, 주장은 또 자기 사람들을 추천하여 당정ㆍ이정을 세웠기 때문에 역(逆)이 순(順)이 되고, 순이 역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다산이 민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오직 통치자의 사리사욕을 채우는데 목적을 두고 하부 조직의 장을 임명하고, 그에 맡는 법을 제정하여 실시해 왔던 당시 하향식 정치구조의 불합리성을 문제 삼고 있는 것이다. 즉 이 같은 전제군주체제하에서는 위에서 아래로 내려주는 방식을 취하기 때문에, 법의 제정 역시 황제가 자기 입맛에 맞게 법을 만들어서 아래로 내려주다 보니 한마디로 민과 목의 관계에서 주객이 전도된 꼴이 되었다고 다산은 진단한 것이다.

다산의 이 같은 주장은 바로 「탕론」과 「전론」에서 언급한 ‘점층식 대의민주제론’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이러한 하향식의 모순된 구조 하에서는 민들은 어쩔 수 없이 목의 횡포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에 다산은 「원목」의 말미에 민과 목의 관계를 바로 잡기 위해 전제군주제도의 폐해를 다음과 같이 신랄하게 비판한다.

“한 사람이 다투다가 이 문제를 해결을 위하여 찾아가면 곧바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왜 그렇게 소란스럽게 구느냐.” 말하고, 또 한 사람이 굶어 죽기라도 하면 ‘네가 스스로 잘못해서 죽었을 뿐이다.’ 라고 말한다. 그리고 민이 곡식이나 옷감을 생산하여 그들에게 바치지 않으면 매질이나 몽둥이에 맞아 피를 본다. 그리고 그들은 이와 같이 부정한 방법으로 거둬들인 돈과 베로 집과 논밭을 장만하고, 권문세족과 재상(宰相)에게 뇌물을 바쳐 후일의 이익을 도모하고 있다. 그래서 ‘민이 목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말이 나오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은 절대로 이치에 맞지 않다. 그런고로 牧은 民을 위하여 존재하는 것이다.(「原牧」)“

즉 하향식 정치체제 하에서는 구조적으로 생태계의 먹이 사슬처럼 최하위 단계에 있는 民의 존재는 단지 牧의 배를 채우기 위한 수탈과 착취의 대상일 뿐이다. 이처럼 눈에 보이는 현상만 놓고 보면 마치 민이 통치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 이치에 어긋나기 때문에 ‘牧은 民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맞다’는 것이 「원목」의 요지이자 결론이다.

무능한 리더는 교체해야 마땅하다

이 같은 다산의 점층식 대의민주제 주장은 「전론」의 여전론(閭田論)과 「탕론」에서도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즉 閭의 5진법에 의한 상향식 지역편성 및 병제(兵制)제안이 그것이다. 기존의 왕조체제 하에서 통치 수단으로 지방 행정조직편성은 ‘도→군·현→읍·면→리’ 형태로 하향식으로 편성 ․ 운영되어왔지만, 다산은 여전론에서 이를 완전히 뒤집어 전국의 지방 행정조직과 농병제도를 하나로 묶어 여를 중심으로 하여 ‘여→리→방→읍→군·현→도’의 점층 형태로 편성하고, 단위별 수장(首長) 역시 민주적 선출방식으로 운영하자는 획기적인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또한 「탕론」에서도 민이 중심이 된 5가(家)를 기본 단위로 하여, 민의 합의로 민의 권리를 위임받은 린장(隣長)은 5진법에 따라 점층식 대의민주제에 의한 이장(里長)⇨비장(鄙長)⇨현장(縣長)⇨제후(諸侯)⇨천자(天子) 순으로 선거에 의해 추대에 의해 치자가 탄생되었다는 것이다.

다산은 또「탕론(湯論)」에서 “무릇 황제(天子)의 지위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인가? 하늘에서 떨어져 통치자가 되는 것인가? 아니면 땅에서 솟아나 통치자가 되는 것인가? 마을 사람들이 추대하여 이장(里長)이 되듯 여러 현장(縣長)들이 다 같이 추대한 사람이 왕(諸侯)이 되는 것이요, 제후들이 다 같이 추대한 사람이 황제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치자는 백성들이 추대하여 이루어진 것이다. 여러 사람이 추대해서 이루어진 것은 또한 여러 사람이 추대하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장이 마을을 잘 통솔하지 못하면 마을 사람들이 의논하여 이장을 끌어내리면 되고, 제후와 방백들이 제대로 하지 못하면 제후와 방백들이 리더를 바꾸면 된다. …… 이는 64명이 연주하는 악단에서 한 사람을 추대하여 지휘자로 삼고, 그가 잘못하면 끌어내려 다른 사람으로 교체하는 것과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즉 이장에서 천자인 군주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민의 뜻에 따라 선출된 민의 대표자들이기 때문에 만약 그들이 민의 뜻을 거역하는 정사를 펼 경우 언제든지 교체할 수 있고, 이는 정당한 행위라고 다산은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러나 다산은 민으로부터 권리를 위임 받은 치자들이 의논하여 상위의 치자를 끌어 내리되 단, 한 단계 아래의 직위로 복귀하는 것은 인정하였다. 패정군주방벌론에서 별도로 언급하겠지만, 군주가 패정을 일삼아 민심을 잃으면 다른 적임자가 천명(민심)을 받들어 그 왕조를 넘어뜨리고 새로운 왕조를 세워도 좋다는 것이다.

다산의 이 같은 주장은 맹자가 주장한 민본사상 및 방벌론과는 분명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 즉 맹자의 민본사상은 위민만을 강조하였고, 또한 방벌론 역시 폭군 군주 교체론에 머물러 있다면, 다산은 민본 위민을 넘어 민의 의사가 반영된 점층식 대의민주제와 치자의 최소 단위인 이장에서 천자인 군주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위의 치자들을 민의 뜻에 따라 교체 가능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측면에서 맹자에 비해 매우 진일보한 것이다.

정치란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원목」과 「탕론」만 놓고 보면 다산이 민의 참정권과 저항권 등 민권을 인정한 정도로만 생각 할 수 있다. 그러나 다산은 단순하게 ‘방벌론’과 ‘민 주체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문제제기에만 그치지 않고, 이 문제와 관련하여 「원정(原政)」을 통해 하향식 전제군주제의 폐단과 모순의 근본적 문제 해결을 위해서 원정(原政)을 논한다.
정(政)이란 무엇인가? 공자는 “政은 바로잡는 것이다.(論語, 「顔淵」, “季康子問政於孔子. 孔子對曰: ”政者, 正也.”)”라고 했다.
그렇다면 바로잡는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이에 대해 주자는 “政이란 말은 사람의 바르지 못함을 바로잡는 것이다(政之爲言, 正也. 所以正人之不正也.)”라고 하였다. 우리는 주자의 이 같은 주석에서도 그가 정치를 내적인 수신에 우선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반해 다산은 “政이란 정치(政治)를 말하며, 잘못된 모든 것을 바로 잡는다(正)는 뜻이다.”라고 주석한다. 즉 바로잡음의 주체를 잘못된 마음이 아닌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는 것으로 재해석하면서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논하고 있다.

“정(政)의 뜻은 바로잡는다(正)는 말이다.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토지의 이익과 혜택을 동시에 차지하여 잘 먹고 잘 살고, 누구는 토지의 이택(利澤)을 받지 못하여 어렵게 산다. 이에 토지를 개량해서 백성들에게 고루 나누어 주어 이 같은 잘못을 바로잡았으니, 이것을 일러 ‘政’이라고 한다.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기름진 옥토가 많아서 남는 곡식을 버릴 정도인데, 또 누구는 척박한 박토(薄土)도 없어서 모자라는 곡식 걱정을 해야만 하는가? 따라서 작은 배와 수레를 만들고, 저울과 말의 규격을 정하여 그 고장에서 생산되는 것을 다른 지역으로 옮기고, 없고 있는 것을 서로에게 융통하게 하도록 바로잡았으니, 이것을 일러 ‘政’이라고 한다.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제멋대로 휘두르고, 또 누구는 힘이 없어 속절없이 빼앗기기만 하다가 결국 망 해야만 하는가? 따라서 군을 조직하고, 죄 있는 자를 벌하고, 멸망의 위기에 처한 자를 구제하고, 대가 끊긴 자는 데를 이어가도록 바로잡았으니, 이것을 일러 ‘政’이라고 한다.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상대를 업신여기며 온갖 악행을 일삼으면서도 멀쩡하게 지내는데, 누구는 정직하고 부지런한데도 왜 제대로 복을 받지 못하는가? 따라서 죄지은 자는 징계하고, 공을 세운 자에게는 상을 주도록 바로잡았으니, 이것이 또한 ‘政’이다. 똑같은 우리 백성인데 누구는 능력이 부족한데도 높은 벼슬을 차지하여 온갖 못된 짓을 전파하고 있고, 또 누구는 능력이 뛰어나고 덕을 갖추었음에도 말단 벼슬에 눌러 앉아 빛을 못 보게 하는가? 따라서 뜻이나 이익을 같이하는 사람들끼리의 모인 집단을 없애고, 공공의 도를 넓혀 능력 있는 자를 기용하고, 불초한 자를 몰아내도록 바로잡았으니 이것을 일러 ‘政’이라 한다.”

이처럼 다산은 정치란 사회전반의 잘못된 모든 관행들을 바로잡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마디로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를 의미하는 것이다. 특히 「원정(原政)」에서 주목할 점은 다산은 정(政)에 관한 주석을 넘어, 제목을 원정(原政)이라 표현함으로써 정치란 채찍을 들어 원래(原)대로 바로잡는 것(政=正+攵)임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다산이 말하는 政이란 제목이 의미하는 原과 접목시키면 세상의 모든 잘못된 것들을 원래대로 바로 잡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여기서 원래대로 바로잡는다는 것은 다산이 「탕론」에서 역(逆)이 순(順)이 되고, 순이 역이 된 역사적 근거를 한(漢)나라 이후로 보고 있다(「湯論」)는 점에서 원정(原政)의 의미는 한나라 이전의 정치를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원정」의 말미에 왕정이 폐하면 소수만 부유해지고 민이 궁핍해지며, 민이 궁핍하면 나라가 가난해지고, 나라가 가난해지면 민심이 떠나고, 천명도 떠나는 악순환으로 이어져, 결국 민은 하늘이 명령한 양심에 따라 공익을 중시하는 새로운 군주를 찾게 된다. 따라서 잘못된 모든 것을 바로잡는 것이 정치이기 때문에 지금 당장 급히 서둘러야 할 것이 政(바로잡음)임을 강조하면서 끝을 맺는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다면 「탕론」과 「원목」은 ‘방벌론’과 ‘민 주체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문제제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 「원정」은 하향식 전제군주제의 폐단과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하향식 정치제도의 시작점인 한나라 이전의 상황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산이 천재적 공상력으로 찾아낸 원래의 ‘점층식 대의민주제’, 그 ‘옛 도(道)대로 牧이 民을 위해 존재하는 정치체제로 지금 당장 서둘러 복귀해야 한다.’는 것을 「원정」을 통해 입증하려했던 것이다. 또한 「원목」과 「탕론」은 ‘방벌론’과 ‘민 주체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한 문제제기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 「원정」은 하향식 전제군주제의 폐단과 모순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은 태초의 정치시스템인 점층식 대의민주체제로 되돌아가야한다는 것이 다산의 일관된 주장이다. 즉 「원목」은 서론, 「탕론」과 「전론」은 본론, 「원정」은 결론, 1표2서는 이를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일종의 방법론이자 실천방안에 해당된다.

하지만 다산은 이 같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위정자들과 지식인들을 향해 「탕론」 말미에 “여름 한 철만 사는 매미는 봄과 가을을 알지 못하니 안타깝다.”며 탄식했다.

마중물 단상(단상)

요사이 세상 돌아가는 꼴이나 정치적 상황을 보면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한마디로 대한민국은 고삐 풀린 망아지와도 같다. 정치도, 경제도, 사회도, 문화도, 교육도 천지모르고 요동치고 있다. 매미가 봄가을을 모르고, 하루살이가 어제와 내일을 모르듯 어제의 잘못엔 반성이 없고, 내일 일은 안중에도 없다.

공자나 다산의 지적처럼 위정자는 있으나 위정자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고, 리더는 있으나 리더의 도리를, 부모는 있으나 부모의 도리를, 자식는 있으나 자식의 도리를 다하지 못하다 보니 세상이 이 모양 이 꼴인 것이다. 제 도리는 못하면서 “나를 따르라”라고 하면 소가 웃을 일이다.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고 비정상이 정상으로 오도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전‧현직 야당 대표는 물론 조국이나 김남국 같은 자들이 도리어 고개를 치켜들고 설친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사는 법인데 지방이 소멸위기인데도 지방자치는 허울일 뿐 위에서 내려주지 않고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제대로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다산은 이르기를 “정치(政治)란 잘못된 모든 것을 회초리(攵)를 들어 바로 잡는 것(正)”이라 했다. 그런데 잘못된 법과 제도를 고치고 바로 잡아야할 국회는 희망이 보이지 않으니 마냥 답답할 뿐이다. 정치꾼은 눈앞의 선거를 의식하고, 정치가는 역사를 의식한다. 하지만 우리 정치판엔 ‘꾼’만 있고 ‘가’는 없으니 이일을 어찌할꼬! 위정자들도 민초들도 대오각성이 절실히 요구되는 오늘, “끌어내려야 한다. 바꾸고 바로잡아야한다”는 200년 전 다산 말씀이 귓가에 쟁쟁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주간영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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